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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한국에 수출하는 반도체 생산 물품 등 일부 소재에 제재를 결정했다. 해당 소재는 일본이 전세계 점유율 70% 이상 차지하는 제품들이다. 당장 수출 제재 때문에 한국 기업이 생산 차질을 빚을 가능성은 작지만 장기적으로는 불안 요소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하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비롯해 필요한 대응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일 서울 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수출상황점검회의 모두 발언에서 “오전 관계 장관 회의를 통해 상황 및 대응 방향을 면밀히 점검했으며, 향후 WTO 제소를 비롯해 국제법과 국내법에 따라 필요한 대응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일찍 홍남기 부총리 주재로 성윤모 산업부 장관 등 관계부처 장관들과 이태호 외교부 2차관,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이 참석한 가운데 ‘녹실회의’를 열고 일본의 수출규제 관련 동향 파악과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성 장관은 일본의 수출규제를 경제보복 조치로 규정하고 깊은 유감을 표했다. 성 장관은 “우리 정부는 그간 경제 분야에서 일본과 호혜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고자 노력해 왔으나, 오늘 일본 정부가 발표한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제한 조치는 우리나라 대법원판결을 이유로 한 경제보복 조치”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원칙에 비추어 상식에 반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강조했다.
성 장관은 “수출제한 조치는 WTO 협정상 원칙적으로 금지될 뿐만 아니라, 지난주 일본이 의장국으로 개최한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선언문의 합의 정신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선언문은 “자유롭고 공정하며 비차별적이고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며 안정적인 무역과 투자 환경을 구축하고 시장개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우리 정부는 그간 업계와 일본의 일방적인 조치에 대비해 수입선 다변화, 국내 생산설비 확충, 국산화 개발 등을 추진해왔다”며 “앞으로도 업계와 긴밀히 소통해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지원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우리 부품 소재 장비 등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교부 차원의 항의도 이날 진행됐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했다. 조 차관은 이날 오후 2시 25분께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나가미네 대사를 불러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해 항의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원인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대법 판결
일본 정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풀자
한국 정부 ‘자발적 출연’으로 해결하자 대립
일본 정부의 수출 제재 조치는 한국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30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배치됐던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을 시작으로 위자료 지급을 명령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린 것이 시발점이 됐다.
일본 정부는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협정에 규정된 분쟁 처리 절차를 밟아 문제를 해결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한일 양국 기업의 자발적 출연으로 재원을 조성해 위자료를 주자고 지난달 제안했으나 일본은 이를 거부했다.
일본 정부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대법원의 첫 배상 판결이 나온 지 8개월여 만인 이날 오전, 반도체 제조 등에 필요한 핵심 소재 등의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했다. 본격적인 보복에 나선 것으로 일본 정부는 “(양국 간)신뢰 관계가 현저히 훼손됐기 때문”이라고 에둘러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논란이 확산하자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과는 무관하다”며 “안보 차원에서 수출관리 제도가 적절히 운용되고 있는지를 재검토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날 한국으로의 수출관리 개정해 스마트폰과 TV 제작에 사용되는 반도체 생산 과정에 필요한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수출 규제 품목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리지스트, 반도체 세정에 쓰이는 에칭 가스다. 일본 정부는 그간 이들 품목의 한국 수출 절차를 간소화하는 우대 조처를 해왔으나, 오는 4일부터 이 우대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수출 규제를 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우대 대상에서 제외되면 수출 계약별로 90일가량 걸리는 일본 정부 당국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가 승인하지 않으면 수출이 금지되는 만큼, 사실상 금수 조치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본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리지스트 세계 생산량의 90%, 에칭 가스는 약 70%를 점유하고 있다. 이들 소재를 사용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은 일본의 수출 규제조치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여기에 더해 한국의 통신기기 및 첨단소재의 수출 통제를 강화하는 대책도 검토하고 있다. 관련법에 따른 ‘화이트 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빼기로 하고 시행령을 개정한다는 계획이다.
시행령이 개정되면 집적회로 등 일본의 국가안보에 관계된 제품을 한국에 수출할 때마다 건별로 일본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일본은 현재 한국과 미국, 영국 등 27개국에 이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걱정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