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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히라사와_유이 조회 수: 126 PC모드
지난 4월 한국인 김 모(55) 씨가 베트남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혐의는 취업 사기였다.
김 씨는 베트남 현지인에게 한국 학교 인턴을 마친 후 취업할 수 있다고 속이고 수수료 명목으로 8억 원 상당을 챙겼다.
정확한 피해자 수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노이 인민법원은 김 씨의 베트남인 아내 등 공범 4명에게도 최대 징역 2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는 성직자 행세를 하며 취업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기소된 A(49)씨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A씨는 2015년 2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자녀를 교단이 운영하는 학교에 취업시켜 주겠다"면서 총 9명으로부터 4억 원가량을 받아 챙겼다.
법원은 "회복되지 않은 피해액이 3억 원이 넘고 죄질이 불량하다"고 밝혔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취업 사기였지만 결과는 사뭇 달랐다.
한 법학과 교수는 "베트남과 한국의 법상 차이가 있고 사안의 경중을 따져야 해서 형량만 놓고 높다 낮다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한국이 사기범죄를 약하게 다루는 경향은 있다"고 말했다.
김웅 검사는 최근 베스트셀러에 오른 '검사내전'에서 "사기는 남는 장사"라고 표현했다.
김 검사는 "한국에서는 사기를 쳐도 잘 잡히지 않고, 설사 잡혀도 대부분 쉽게 풀려난다"며 "사기범 재범률이 높은 것은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사기범죄로 인한 피해가 큰 만큼 살인, 폭행 등 강력범죄보다 가볍다고 여기는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인에게 사기당하고 우울증까지"…피해액 대부분 회수 못 해
대검찰청의 '2017 범죄분석' 통계자료를 보면 2016년 수사기관에 확인된 사기범죄는 총 25만600건으로 전체 범죄 가운데 12.5%를 차지, 절도죄(20만3천573건)를 웃돌았다.
피해 액수는 2016년 기준 100만 원 이하가 30.5%로 가장 많았다.
1천만 원 이하(24.8%), 1억 원 이하(22%), 1억 원 초과(7.6%)가 뒤를 이었다.
성남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유 모(36) 씨는 최근 밤잠을 못 이룬다.
지난해 11월 지인에게 1천만 원 가까이 사기당한 생각이 떠올라서다.
유 씨는 "선금 하면 가게 인테리어 비용을 30% 할인해준다는 말에 돈부터 보낸 게 실수였다"며 "1년 가까이 알고 지내던 동네 언니가 소개해준 업체였는데 입금하고 며칠 뒤 언니와 업체 전부 연락이 두절됐다"고 말했다.
사기는 주로 '아는 사람'이 저지른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친구와 선후배 등 지인에게 속았다는 피해자가 57.1%로 가장 많았고, 친·인척에게 피해를 본 경우도 9.1%였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의 비율은 33.8%였다.
사기당한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사기 피해자가 피해액을 회수하지 못하는 비율은 2014년 91.44%에서 2016년 83.34%로 하락세를 보였지만 여전히 피해자 10명 중 8명은 속앓이를 한다.
물질적 피해뿐 아니라 정신적 피해도 크다. 피해자의 절반 이상인 55.26%는 우울증과 두려움을 경험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최수형 박사는 "사기범죄피해자는 주로 가해자에 대한 원망보다는 가해자를 믿었던 자신을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아는 사람에게 사기범죄를 당해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과 불신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기 친 사람이 또 사기'…사기범죄 재범률 38.8%
'34회'
B 할머니의 사기 전력이다.
후덕한 인상의 B 할머니는 수백억 원대 어음 사기를 저질렀다.
회사를 인수해 1년간 충분히 신용을 쌓은 후 중소거래업체를 뒤통수 치는 방법이었다.
거래업체들을 속여 대량으로 물품을 외상구매한 후 이를 '땡처리' 시장에 헐값으로 팔아치웠다.
B 할머니를 잡아 결국 교도소에 가두었던 김웅 검사는 자신의 책에서 "할머니는 10년 넘게 같은 사기를 반복했는데 단 한 번도 처벌받지 않았다"며 "수차례 수배를 받아 기소중지가 됐지만 전혀 체포되지 않은 전설적인 기록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기소중지는 피의자의 소재가 불분명해 수사를 종결할 수 없을 때 그 이유가 없어질 때까지 수사를 일시 중단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사기 친 사람이 또 사기를 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사기범죄자 중 전과가 있는 사기범은 8만6천323명으로 77.3%에 육박했다.
이 중 사기전과자는 3만3천608명이었다.
같은 범죄를 다시 저지르는 동종재범률이 38.8%다. 살인강도방화 등 강력범죄의 동종 재범률(12.4%)을 3배 웃돈다.
◇사기죄 '솜방망이' 처벌…범죄수익 환수도 어려워
이처럼 다른 범죄에 비해 높은 재범률의 원인으로는 낮은 범죄수익 회수율과 약한 처벌이 꼽힌다.
2014년 사기범죄 수익금은 8조44억 원에 달했지만, 회수금은 1%에도 못 미치는 703억 원에 그쳤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사기죄는 부패재산 몰수법의 몰수·추징대상 범죄에서 빠져있어 검찰이 범죄수익 환수에 나서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약한 처벌도 문제다. 최근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사기범죄의 대법원 양형기준을 대폭 높여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사기범죄는 범죄자들이 잘하면 집행유예이고 잘 안 되면 한 1년 살고 나온다는 생각을 한다"며 "현재 사기범죄는 경제범죄에 속한다는 이유로 피해 금액 1억 원 이하는 살인, 강도, 절도, 성폭력 등 강력범죄와 달리 구속수사를 안 한다"고 지적했다.
사기로 피해를 본 박 모(30) 씨는 "나를 포함해 총 6명의 피해자가 약 2억 원의 피해를 봤지만 정작 사기를 친 사람은 겨우
1년 6개월 징역형이 나왔다"며 "나는 결국 그 모든 빚을 떠안고 힘든 생활을 하게 됐는데 그 사람은 짧은 죗값을 치르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이영란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다른 나라는 경제범죄를 엄하게 처벌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며 "무조건 현행법을 강화하기보다는 현재 있는 법안에서 법원이 무겁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피해 당사자의 적극적인 신고와 지원체계도 필요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최수형 박사는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신고를 통해 피해 금액을 되돌려 받기 어렵고, 아는 사람에게 당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신고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며" "사기범죄 예방 및 신고 자체를 유도할 수 있는 피해자 지원 체계도 시급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