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남(57‧사법연수원 16기) 전 검찰총장이 퇴임한 지난 15일 검찰 내부 통신망에 검찰의 자성과 고민을 촉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검찰의 침통한 분위기를 안타까와하면서도 검찰 스스로를 되돌아 봐야 한다는 취지다. 새 정부가 강도 높은 검찰개혁을 예고한 상황에서 향후 검찰 내부의 반응이 주목된다.
이날 검찰 내부망(이프로스) 검사 게시판에는 두 건의 글이 올라왔다.
의정부지검 소속 임은정 검사는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검사 게시판이 활발하던 그 때가 그립다”면서 “이제는 게시판에 올린 글로 불려 다니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애정이 없다면 고민도 없을 것”이라며 “이제라도 머리를 맞대고 검찰을 어떻게 바로세울 것인지 지혜를 모으자”고 내부 논의 활성화를 독려했다.
이어서 박철완 부산고검 검사가 글을 올렸다. 박 검사는 검찰 조직을 이철수 화백의 판화 작품 ‘먼 길 가는 새’에 비유했다. 이 작품은 철새들이 V자 대열을 이뤄 나는 모습을 그렸다. 박 검사는 “선두의 새가 선두에 있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날갯짓을 한 것은 분명한 일”이라며 “저는 그림 맨 오른쪽 하단의 새이고 싶다”고 했다.
박 검사는 “공수처 설치나 수사권 조정 논의는 2005년, 2011년에도 활발하게 있었다. 이 논의는 6년 단위로 검찰이라는 행성을 찾아오는 혜성과 같다”고 했다. 또 “이 혜성을 대하는 검찰 구성원들의 마음과 자세는 올해는 과거와 많이 달라진 듯하다”며 “다양한 논의를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6년 전 대검 중수부 폐지 논쟁이 벌어졌던 때 내부망에 올라왔던 박혁수 검사(현재 대검 연구관)의 글 두 개를 소개했다. 박 연구관은 2011년 6월과 7월에 올린 ‘넋두리’, ‘남아있는 쟁점들’이란 글에서 검찰에 대한 비판적 여론에 억울함을 호소하기보다 자기 반성이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2011년 당시는 수사권 조정을 두고 검‧경 갈등이 극에 달했던 때다.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은 정부와 국회의 수사권 조정에 항의해 임기를 40여 일 남겨놓고 자진사퇴했다. 박 연구관은 당시 글에서 “우리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큰 파도가 우리한테 달려들 것”이라고 했다. 그의 우려는 6년 만에 다시 현실화했다. 6년 전에 쓴 글이지만 박 연구관의 글은 현재 검찰이 가진 위기감을 대변하고 있다. 박 검사가 박 연구관의 글을 다시 꺼내든 이유다.
박 연구관은 당시 글에서 “검찰권이 공정하게 행사되고 있는지 여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검찰권이 공정하게 행사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냐 하는 점”이라며 “사법은 공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정하다고 보여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검찰권 행사에 대해 우리 스스로 떳떳하면 됐지 외부에 어떻게 보이는지가 뭐 그리 중요하냐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그 ‘외부’라는 세력이 우리에게 검찰권을 위임한 국민이고, 그 국민은 언제라도 형사소송법 조항 몇 글자를 삭제해 우리가 그토록 소중해마지 않는 수사권, 수사지휘권을 박탈할 수 있는 주권자”라고 강조했다.
박 연구관은 “검찰 개혁의 핵심은 인사제도의 개선”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 주장에 대해선 “내사를 빙자해 사법통제를 받지 않는 수사를 해보고 싶은 (경찰의) 열망”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다만 주기적으로 수사지휘권 논쟁이 불거지는 이유는 검찰이 사법경찰 송치사건에 대해 제대로 수사지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우리도 바꿔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 연구관은 “앞으로는 검찰이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개혁 이슈를 선점하며 혁신 능력을 보여주는 검찰이 됐으면 좋겠다”며 글을 맺었다. 익명을 원한 검찰 관계자는 “지난 몇 년 동안 구성원들의 내부 논쟁이 많이 줄어든 데다 최근의 상황에 대한 위기감 때문에 구성원들이 의견 개진을 더 꺼리는 것 같다”며 “치열한 내부 토론이 활성화돼 우리 스스로 개혁 이슈를 주도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내놔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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