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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미 정상의 6.30 판문점 회동은 가능성이 높게 거론된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적절한 '중재자' 역할 속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담한 판단이 만나 이를 가능케 했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 합의 무산 이후 북미는 물론 남북 간에도 냉기류가 흐르는 교착국면이 4개월간 계속됐다. 하지만 분단의 최전선 판문점에서 이뤄진 '평화의 악수'는 꽉 막힌 대화의 통로를 일거에 뚫어버렸다. 이른바 '톱다운' 의사결정 방식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제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북미 정상은 멈춰섰던 비핵화 협상의 재개를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주 내에 양국에서 팀을 구성해 협상을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고, 북한은 1일 관영매체를 통해 이를 확인했다. 북미 양측이 '하노이의 충격'을 딛고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구축을 위한 실무협상에 다시 시동을 거는 것이다.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이번 회동에서는 북미가 단순히 대화의 의지를 확인하는 데서 그친 게 아니라, 하노이 이후 극복하기 어려울 것 같았던 양측의 입장 차이를 상당히 좁힌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일단 실무협상의 조건은 원만하게 마련되는 분위기다. 북미 정상은 협상 재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가시 하나를 시원하게 뽑아냈다. 그동안 북한은 지속적으로 미국의 실무팀 교체를 요구하며 '새로운 셈법'을 들고나오라고 촉구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이 타깃이었다.
이와 관련, 폼페이오 장관은 전날 한국을 떠나기 직전 양 정상의 대화 한 대목을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누구와 협상할지 팀을 고르라'고 제안하자 김 위원장은 "누가 미측 협상팀을 운영할지에 대해서는 엄연히 당신(트럼프)이 선택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 정상이 이 문제에 대해 동의했느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협상 재개를 위한 첫 걸림돌이 제거됨에 따라 이르면 7월 중순께 북미간 실무협상팀 접촉이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이번 회동에서 북미 정상 간 신뢰를 과시함으로써 향후 실무협상에 동력을 실어주고, 협상의 내용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하노이 회담에서 확인한 이견이 다시 돌출되면서 난항을 겪을 여지는 충분히 있다. 일단 북미는 비핵화의 정의 및 방법론 등에 대해 가장 큰 이견을 노출할 가능성이 있다. 하노이 회담에서 일괄타결식 '빅딜'을 고수하면서 판을 깬 미국이 최근 다시 '동시적·병행적 접근'을 거론하고 있지만, 협상전략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날 한미정상회담 직후 문 대통령은 "(한미 양국은) 싱가포르 합의를 동시·병행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만난 뒤 "포괄적인 좋은 합의에 이르는 것이 목표"라고 언급했다.
제 시간 안에 '하노이 이견' 좁힐 수 있을까
한미 정상이 공식화한 '동시적·병행적 접근' 해법을 두고 미국의 기조가 유연해졌다는 평가도 있지만, '단계적·동시적 접근'을 주장하는 북한의 입장에 견주면 결이 다르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상태를 보증받는 '포괄적 합의'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면, 북한의 주장은 영변 핵시설 폐기 등 단계적 조치에 상응하는 미국의 동시적 조치를 통해 신뢰구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속도보다는 올바른 협상을 추구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 점은 향후 치열한 협상 과정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홍민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포괄적 합의'가 기존의 '선비핵화' 입장을 다시 강조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회동에서) 미국의 기존 입장을 수용했을 수도 있고, 양측이 비핵화에 상응하는 조치를 단계별로 포괄적으로 교환해야 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며 "그렇지 않다면 이 차이에서 접점을 만들어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지점에서 북한이 대미 협상에 김영철 전 통일전선부장이 주도한 이른바 '통전부 라인' 대신 '외무성 라인'을 내세운 점이 주목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회동 직후 기자들에게 "우리는 카운터파트로 (북한) 외무성을 상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의 대미협상 라인이 교체됐다는 사실이 공식화된 셈이다.
실제 판문점 회동에는 북한의 공식 외교수장인 리용호 외무상이 김정은 위원장을 수행했고, 1일 북한 노동신문이 공개한 사진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비공개 회담 때도 배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1995년 경수로 공급 협상, 2000년 북미고위급회담, 2011년 이후 남북 비핵화회담 및 북미고위급회담 등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북한 최고의 '미국통'으로 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동안 미국은 군인 출신으로 '선이 굵은' 김 전 부장과의 협상에 부담을 느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이 미국과 비교적 수월하게 대화할 수 있는 리 외무상을 내세워 강력한 협상 타결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실무협상 과정에서 북미 간 유연한 접근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배경이다.
북미 양측에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 역시 협상의 변수로 꼽힌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올 연말을 협상 시한으로 설정했다. 여기에는 내년이 노동당 창건 75주년인 데다, 지난 2016년 5월 노동당 제7차대회에서 내세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 완성되는 해라는 점이 배경으로 고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어떻게든 올해 안에 북미 협상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거나 '중대한 결심'을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반도 문제의 성과를 내년 자신의 재선가도에 활용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북한 이슈가 악재로 돌출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 입장이다.
물론 이러한 조건은 북미 양측으로 하여금 속도감 있는 협상을 추동하는 요인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백악관 초청 의사를 재차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홍민 실장은 "워싱턴 초청은 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해서 마무리짓겠다는 기대나 믿음,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신뢰하지 않는 상대로 이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와 함께 북미 간 성공적인 실무협상을 토대로 제3차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의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나온다. 김동엽 교수는 "정부가 북미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기보다는 남북관계에 보다 집중하는 모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북미관계를 추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판문점회동 소식을 전하면서 "조미 최고수뇌분들께서는 앞으로도 긴밀히 연계해나가며 조선반도 비핵화와 조미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나가기 위한 생산적인 대화들을 재개하고 적극 추진해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
어서 우리나라에 평화가 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