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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회탈리카 조회 수: 159 PC모드
출처 - 삼산정명의 '유목민이 본 세계사에 실린 단편
고구려 초기 경제는 약탈경제였습니다. 그런데 약탈경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시는 분들이 있어서 위글을 올립니다.
유목민
집단의 군사 활동과 유목국가의 확대를 설명하는 데에 하나로 결정된 패턴이 있다. 유목 생활은 그 자체로는 충분히 자립할 수 없는
생산형태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탈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주세계'와 '문명지역'을 공격·침략했다는 설명이다. 이것은
이상할 정도로 끈덕지게 반복되어 왔다. 확실히 단순·명쾌하여 알기가 쉽다. 자기 자신을 '정주세계'와 '문명지역'의 자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인간에 의해 어떤 종류의 정념에 호소하는 바이기 때문에 보다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그것만으로 좋은가? 솔직히 말해 너무 지나친 단견이다. 어느 정도까지는 진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이상도
아니다. 도가 지나치면 말하는 것도 거짓이 된다. 예를 들면 약간 왜곡이 있지만 반증을 위해 극단적인 경우를 열거해 보자.
가족단위와
2,3 가족 정도의 작은 규모의 집단이라면 실은 유목생활만으로 자기 완결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야채 등 노변에 있는 것을 집어먹으면 좋다. 실은 역사상 그러한 성질을 찾으면 그러한 사례 상당수를 확인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유목이라고 해도 다양한 상태가 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자립할 수 없기 때문에 탈취한다'는 것은 커다란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제 1장에서 말한 것처럼 유목민은 생활필수품과 용구·자제 등 여러 가지 '부족한
것'을 교역으로 매입한다. 그것이 보통의 일이다. 부족하기 때문에 탈취한다'는 것은 평상적으로는 거의 있을 수 없다. 이제까지
설명의 방식은 이른바 '약탈의 논리'이다. 극히 당연한 교역의 논리를 망각하고 평탄하게 말하는 것은 정말로 무섭다. 이것을
주장하는 사람도, 수긍하는 사람들도 필시 유목민을 노상강도라든가 도둑 같은 사람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교역의 논리'를 포함하여 유목민의 생활상의 출연으로부터 역사상의 눈을 크게 뜨고 광범한 군사활동을 설명할 수 있는가? 생활
면으로부터 일체의 사물을 해석하려는 것은 '생업의 논리'라고 말해도 좋다. 인류학자들에 의한 유목민 연구는 이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리고 역사상 주목할 만한 유목국가에 대해서도 거기에서 원용했던 견해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한다. 문제는 '생업의 논리가 과연
만능인가이다.
초점은 집단의 규모에 있다. 유목민 집단이 생활 정도의 크기에서 머물면 물론'생업의
논리'가 유효할 것이다. 또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해도 좋다. 그러나 집단의 규모가 커지게 되면 사태는 급변하고,
그렇게는 살 수 없게 된다.
외부를 향해서는 유목집단 그 자체가 정치력을 가진 존재가 된다. 그리고
내부에서는 대집단이 되면 될수록 집단 전체를 하나로 연결하는 경제력, 혹은 통합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각종의 고정 시설 등 다양한
'정치장치'가 필요하게 된다. 그것은 이미 '생업의 논리'를 초월한 '집단의 논리'라고 말해도 좋다.
중앙
유라시아 각지의 유목민 문화에 대해 역사문헌과 고고자료로 다각적인 분석을 시도했던 하야시 도시오에 의하면, 흉노의 유목지역
여기저기서 그러한 수공업 생산품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분명히 순수한 유목생활 이외의 생산물의 거점 역할을 했던 것이다. 더욱이
농업을 행했던 흔적도 보인다. 본래 유목민과 도시는 배치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유목민은 도시를 필요로 한다.
물론
집단의 규모와 정치·군사집단으로서의 실력에 따라 그 모습에는 폭이 있다. 작은 집단이라면 유목민은 오히려 도시로 다가가고,
때로는 도시에 기식하고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랍의 베드윈 등이 그 전형이다. 현재 아프리카에 있어서 유목민도 그러하다.
그런데
집단의 규모가 크게되면 당연히 그 정치상의 의미도 커지게 되고, 유목민과 도시의 힘의 관계는 역전된다. 거대한 유목초원이 펼쳐져
있는 유라시아에서는 역사상 유목민 집단이 정치력을 발휘할 정도의 규모에 도달하면 대개의 경우 스스로 나아가 그 목지 내의 요지에
집락과 도시를 준비한다. 그것은 거의 필연에 가깝다.
6~8세기의 돌궐과 8~9세기의 위구르
유목제국 이후에는 유목지역 내에서 도시 건설은 극히 보통의 일이다. 키타이 요제국 등에 이르러서는 지배층을 구성하는 목민집단과 그
영수(두목(頭目) 마다 초원도시를 건설했다. 당시의 한문 문헌에는 그것을 '두하(頭下)의 군주(軍州)'라 불렀다. 두목의 예속
하에 있는 성곽도시라는 것이다.
사물의 형편처럼 본래 그러한 것이다. 오히려 특별나게 생각하는 쪽이
우스운 것이다. 이것을 굳이 '유목도시'와 '목지도시'등이라고 명명하여 어딘지 특이하고 기묘한 것 같은 분위기를 나타내는 것은
작위적이다. 당연한 것을 특별시 하면 반대로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흉노에 대해서
지금으로서는 확실한 보고서가 적다. 게다가 양·질에 있어서도 불충분한 소련시대의 고고 조사에 의한 것밖에 없다.(무엇보다도 이후
조사가 진행되면 몽골고원 내외에 걸쳐 한층 더 많은 실례가 보고될 것은 거의 의심이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앞에서 말한 것처럼 복수의 위곽집락(성곽이 있는 말을)의 유적지가 확인되고 있다. 그것들은 하천과 호수·늪 주위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주위의 환경·지세·자연조건으로부터 월동기의 동영지 내지는 그것이 발전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예도 있다.
일부
반복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유목국가라 하면 곧 '부족한 자의 정복욕'이라는 이해로 기울어지는 것은 이미지의 연상으로 성립된
것이다. 그것은 과도하게 순수한 유목민만을 머리 속에서 상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상의 근저에 유목민은 어떠한 것도 없다는
멸시가 숨어있다.
현실에는 다양한 유목민이 있으며 생활의 방식도 다양한 패턴이 존재한다. 말 그대로
참된 의미의 순진무구한 유목 생활을 하는 자가 과연 어느 정도의 비율이었는가? 예를 들면 유목하면서 연간 이동거리 중에서 농경과
야채재배를 하는 자도 상당히 있다. 또 본래 유목과 대상은 옛부터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어느 쪽도 일종의
'겸업목민'이라는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이론적으로 보면 여름철에는 사람도 가축도 방출하여 텅비게
되어 있는 동영지에서 일부의 목민이 순번적으로 잔류하고, 거기서 농업과 교역을 하는 예도 있다. 그것이 고정화되어 점포와
상업거점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원래 이러한 집단 내에서의 분업화는 집단이 커지게 되고 시대가 내려올수록 현저해진다.
그러면
하나의 물음과 관련하여 역으로 순수 농민이라는 상태를 생각해 보자. 역사를 회고하면 실은 태고적으로부터 죽 농경만으로 영위하는
인간은 희소할 것이다. 순수하게 농경만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오히려 시대가 내려오면서 인위성이 농후한 존재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본래의 자연적인 상태는 없을 것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순수 유목민이라는 것도 과연 어디까지 사실로 볼 수
있는가?
유목민이 '자립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을 약탈하고 타지역에 대한 정복활동을
하게 된다면 '자립할 수 있는' 농경민과 도시민, 그리고 그의 국가는 대외원정과 정복활동을 수행하지 않았는가? 중화제국과
이슬람국가, 더욱이 서구 제국과의 대외원정 및 침략·확대는 유목국가의 그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생업의
논리'로 설명하면 일견 그럴싸하다. 언제나 현대적인 사고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납득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도 때와 장소에
의한다. 무엇보다도 역사상 단일적인 생업으로 일관되었던 집단과 사회는 오히려 적을 것이다. '생업의 논리'만으로 모든 것에 대해
결론을 내리면 반드시 무리가 생겨난다. 실은 어느 정도 이상의 집단이 되면 '정치의 논리'와 '통합의 논리'가 전면적으로
등장한다. 그러한 형태가 보통인 것이다.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할 정도인
유목국가의 확대는 다른 국가와 비교하여 돌출되었던 군사력을 갖고 있으며, 타고날 때부터 융통성이 뛰어난 복합체였던 것이야말로
역사상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쉽다. 국가로서의 구조·구성요소·특질을 확대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중앙 유라시아의 자연환경이
그것을 더욱 조장한다. 그것은 이미 '생업의 논리'를 훨씬 초월하고 있다. 필시 '국가의 논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