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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교역 허브로 급부상

한국일보

지난 8일 호찌민 시내 '여행자의 거리'로 불리는 부이 비엔거리 모습. 그 주변에는 해피벌룬을 비롯한 다양한 마약을 판매하는 맥줏집들이 즐비하다. 길거리에 좌판을 깐 담배 장사꾼들은 십중팔구 대마초 헤로인 등 다른 마약도 함께 판매한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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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대표 신흥국 베트남이 마약 교역의 허브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 최대 마약(아편) 생산지 중 하나인 ‘골든 트라이앵글’(라오스, 태국, 미얀마 접경지)에서부터 동서ㆍ남북 경제회랑을 타고 베트남으로 모인 마약이 중국과 대만, 필리핀 등지로 다시 흘러가는 식이다. 이곳에 모인 마약이 다시 한국 일본 등 동북아 국가와, 캐나다 미국 등 북미, 호주 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로 넘어가는 것으로 베트남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부 반 하우 공안 부부장이 “전 세계 마약 범죄자들이 베트남을 선택하고 있다”며 각급 기관에 최고 수준의 감시와 단속을 주문해 놓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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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밀매경로/ 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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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 비웃는 마약상들

마약과의 전쟁 선포에도 불구하고 마약상들은 평온을 누리고 있다. 베트남에서 마약 구하는 일이 껌 사는 일에 비교되는 게 단적인 예다. 여행자의 거리로 유명한 호찌민시 ‘부이 비엔 거리’에서는 커피나 맥주 몇 병 마실 돈이면 각종 마약을 구할 수 있고, 거리를 지나기만 해도 마약 구입 권유를 끊이지 않고 받을 정도다.

현지 마약시장 사정에 밝은 Y(36)씨는 “부이 비엔 거리는 조직폭력배들이 잡고 있어 공안(경찰)도 단속하지 않는 구역”이라며 “여러 국가에서 온 관광객들이 폭력집단의 비호 아래 마약을 즐기는 곳”이라고 말했다. 실제 ‘해피벌룬’이 일반 맥줏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팔리는 것은 물론, 길거리 담뱃가게는 대부분 다양한 종류의 마약을 판매하는 소매상 기능을 겸한다. 지난해 베트남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전년 대비 20% 늘어난 1,550만명을 기록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부이 비엔 등 ‘여행자 거리’를 필수 코스로 들른다.

베트남 마약중독자 수는 22만2,600명에 달하지만, 약물중독센터에서 재활치료를 받는 비중은13.5%에 그친다. 19%는 교도소에 수감 중이며, 3명 중 2명인 나머지(67.5%) 중독자들은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하거나 간섭을 받지 않고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Y씨는 “마약이 자살은 물론 강간, 살인과 같은 강력 사건들과 연결돼 있지만 공급ㆍ유통책들만 크게 단속하고 소매상, 이용자들에 대한 단속은 미미한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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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호찌민 시내 부이 비엔거리의 한 맥줏집 내부 모습. 점원이 주문 받은 해피벌룬을 나르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해피벌룬에 들어가는 가스를 공업용도 외 사용 금지를 추진하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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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분기 적발량, 지난해 1년 치 초과

마약에 빠진 사람들 절대다수가 방치되다시피 하고, 이들이 계속 마약을 찾으면서 베트남 마약 시장 규모는 확대되는 분위기다. 공안 마약범죄 수사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처리한 마약사건은 모두 6,562건으로 작년과 비슷한 수준. 하지만 이들 사건 수사를 통해 압수한 마약 양은 6톤이 넘는다. 작년 한 해 모두 6톤의 마약을 압수한 것을 감안하면 1년 사이 4배 이상 폭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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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증하는 베트남 마약 밀매 / 강준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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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현지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당국은 잇따라 큰 ‘건’들을 처리하고 있다. 지난 3월 20일 호찌민시 인근 비떤 지역에서는 공안, 국경수비대, 지역 경찰 등이 합동작전을 펼쳐 필로폰 300㎏을 압수했다. 남부에서 적발된 마약으로는 최대 규모였지만, 현지 사회는 놀라움을 표시하면서도 동시에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마약이 주변에 흔하다는 뜻이다. 또 지난달 13일에는 호찌민시에서 대만, 중국인이 포함된 마약조직을 적발, 합성마약(케타민) 500㎏을 압수했다. 2,100만달러(약 250억원)에 해당하는 양이다. 한 달여 만에 최대 적발 기록이 경신된 셈이다. 그러나 이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1분기에 압수한 마약 중 상당수가 일상 교통 검문 등에서 우연히 적발된 경우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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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이 압수한 마약들. 현지 매체 캡처


베트남은 긴 국경 때문에 마약 거래의 최적 조건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경 관리가 취약한 라오스, 캄보디아와 접하고 있어 단속이 취약할 수밖에 없고, 밀매 루트 역시 수시로 변경돼 단속이 쉽지 않다는 게 공안의 솔직한 고백이다. 3,000㎞에 달하는 해안선도 베트남을 ‘마약 교역의 중심지’로 끌어올린 주요 요소 중 하나다.

◇’솜방망이 처벌’이 부채질

베트남 국내 청소년 마약 문제는 아직 공식적으로 표면화하지 않았지만 심각한 실정이다. 지난해 9월 하노이에서 열린 한 뮤직페스티벌 참가자들이 마약을 과다 복용, 7명이 숨지고 5명이 병원에 입원한 사건이 단적인 예다. 특히, 사건 이후 하노이시 고위 관계자가 5명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 봉투를 건네며 ‘격려’하는 사진이 보도돼 공분을 샀다. ‘잘못은 했지만 어른들이 보듬어 줄 수 있다’는 식의 의견이 없지 않았지만, ‘처벌이 마땅한 이들을 찾아가 격려한 것은 베트남에서 마약 사용에 대한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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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하노이에서 있었던 한 뮤직페스티벌에서 해피벌룬 등 마약을 하다 병원으로 후송돼 진료 중인 청년을 하노이시 고위 관료가 찾아 봉투를 건네며 '격려'하고 있다. 이 사진은 당시 국민적 공분을 샀다. 마약에 대한 베트남 지도층의 인식 단면이기도 하다. 현지 매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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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내 한 국제학교 관계자는 “세컨드리(중ㆍ고교) 학생들의 머리카락을 불시에 뽑아 당국에 넘기고 있다”며 “이용 연령층이 낮아지면서 교내에서도 마약은 심각한 이슈로 자리 잡았다”고 전했다. 최근엔 호찌민 시내 한 국제학교 학생이 마약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는 일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은 헤로인, 코카인 등 100g이상의 마약을 밀수하는 경우 사형에까지 처하도록 하는 등 마약의 밀수, 유통에 관해서는 강력 처벌하고 있지만, 마약 사용자들에 대해서는 유독 처벌이 약하다. 마약을 하다 적발돼도 경고 또는 50만~100만동(약 2만5,000~5만원) 과태료가 고작이다. 호찌민 총영사관 관계자는 “한국은 속인주의를 적용하고 있는 만큼 해외여행, 체류 중 마약행위는 이후에라도 처벌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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