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_김승미
“일본 의존도 높고 수출국 행선지 많은 품목 우려”
31일 업계 설명을 종합하면, 한국이 비화이트국가가 될 경우 일본보다 경쟁력이 낮거나 일본 소재 의존도가 높은 산업이 제일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나금융투자증권은 29일 내놓은 ‘일본 수출규제의 향후 전개방향과 국내 경제 영향’ 보고서에서 “대일본 수입금액이 높고 일본산 대체 가능성이 낮은, 그러면서 일본 입장에서 수출국 행선지는 고루 분배된 품목”을 다음 규제 강화 대상으로 예상했다. 이미 규제가 강화된 반도체 3개 소재가 이런 경우다. 비슷한 조건인 품목으로는 반도체 웨이퍼, 평판 디스플레이 제조용 기계, 자동차·기계·화학 업종에서 쓰이는 공작기계, 탄소섬유, 전기차용 배터리 등이 거론된다.
일본 수입의존도가 90% 이상인 품목도 48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유엔 국제무역통계 에이치에스(HS)코드 6단위 기준 품목들을 분석해본 결과다. 에이치에스란 국가 간 무역거래에서 상품에 부여하는 코드로, 6번째 숫자까지는 모든 나라가 같고 7~10번은 각 국가가 산업구조 등에 맞춰 별도로 세분화해 사용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한·일 주요 산업의 경쟁력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광물성 생산품, 화학공업 또는 연관공업 생산품, 플라스틱·고무 등의 일본 의존도가 매우 높았다.
규제 강화 대상 불분명해 ‘대혼란’…일본의 노림수?
가장 큰 문제는 온갖 추측만 나올 뿐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화이트국가에서 배제되면 1100개 전략물자를 한국으로 수출하는 일본 기업은 3년짜리 포괄허가를 얻을 수 없게 된다. 건건이 개별 허가를 받거나, 전략물자 수출을 스스로 잘 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해 자율준수무역거래자(CP) 인증을 받음으로써 3년짜리 특별 포괄허가 취득을 시도해볼 수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여러 차례 ‘안보상 문제가 없는 민간 기업 간 정상적인 수출은 막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왔다.
그러나 앞서 규제 대상이 된 반도체 3개 소재 수출 역시 안보상 문제가 확인된 것은 없다. 한-일 외교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일본 정부가 한국에 타격을 입힐 품목을 임의로 골라 규제를 강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는 배경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적용 대상 부품, 소재가 명확하지 않아 납품업체와 정부 등을 통해 (실제 규제 현황과 파급력 등을) 정보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모든 것을 해야 한다”
당장 기업들로선 수입 물자가 순수하게 산업용임을 일본 정부에 설명하고 증명해 기존 거래선을 유지하는 게 최선이다. 여의치 않을 경우를 대비해 재고 확보와 수입선 다양화 및 국산화란 모든 대안적 조처에도 나서야 한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웨이퍼 등의 수급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협력업체와 논의해 최대한 재고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에 소재를 납품하는 한 대기업 관계자도 “통상 한두달치 재고를 확보해놓는데, 수입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에 대비해 6개월치 물량을 긴급히 확보했다”고 했다.
전기차 배터리 업종도 분주하다. 배터리 4대 요소인 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 등은 이미 국산화와 공급 다변화가 상당 부분 이뤄졌거나, 이뤄질 전망이라 일본에서 조달되는 물량이 줄어도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기차에 쓰이는 중대형 배터리 파우치는 아직 일본과 기술 격차가 커 규제 대상에 오를 경우 타격이 우려된다. 수소차 보급에 핵심적인 수소탱크 재료 ‘탄소섬유’ 역시 일본 의존도가 높아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다만 판매량이 한해 수백대 수준에 그치는 수소차 견제를 일본이 카드로 쓸 가능성은 작다는 견해도 많다.
우려 업종의 한 기업 관계자는 “고객이나 납품 대상 기업을 생각하면 국산화나 수입선 다변화를 위한 어떤 노력을 얼마큼 하고 있는지 설명해 리스크를 줄여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존 일본 기업과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 수 없어 무엇 하나 공개적으로 얘기하기 어렵다”며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최하얀 기자, 산업팀 종합 ch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