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뉴시스】유재형 기자 = 법원이 27년간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우발적으로 남편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50대 여성에게 그간의 안타까운 가정사를 참작해 집행유예로 선처했다.
울산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박주영 부장판사)는 상해치사죄로 기소된 A(50·여)씨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고 21일 밝혔다.
A씨는 올해 1월 울산 중구 자신의 집에서 귀가 문제로 남편 B씨와 다투다 우발적으로 배 부위를 흉기로 1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술에 취한 B씨는 동생 집에 있다 늦게 집에 온 A씨에게 "너도, 동생도 다 죽이겠다"며 흉기로 위협했고, A씨는 "죽으려면 가족들 괴롭히지 말고 혼자 죽으라"며 맞대응했다.
이에 B씨는 "알았다. 내가 죽겠다"며 흉기를 A씨에게 건넸고, 이후 B씨가 욕설과 함께 위협적으로 다가오자 A씨는 흉기로 B씨를 찔렀다. 곧바로 병원에 옮겨진 B씨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사건 발생 3시간여 만에 과다출혈로 숨졌다.
지난 1992년 부부의 연을 맺은 이들은 결혼초기부터 나타난 남편 B씨의 심한 주사로 인해 결혼생활이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B씨는 평소에는 누구보다 다정다감했지만 술을 과하게 마신 날이면 가족은 물론 주변사람들에게도 폭언을 하며 가전제품을 부수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반복했다. 술자리 도중 다른 사람과 시비가 붙은 일도 수시로 벌어졌다.
술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던 B씨는 2006년부터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2008년과 2010년 두차례에 걸쳐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A씨는 생계를 위해 백화점과 의류매장 판매직원 등을 전전하다 겨우 한 전자회사의 서비스센터 정직원으로 채용됐지만 B씨의 폭력적인 주사는 고쳐지지 않았다.
B씨의 오랜 가정폭력은 두 아이에게 이어져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등 가족 모두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검찰은 사건 초기 살인에 혐의를 두고 조사를 진행지만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판단해 상해치사죄로 A씨를 기소했다.
박주영 부장판사는 "고귀한 생명을 빼앗은 범죄는 원칙적으로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서로를 의지해야 할 부부 사이에 발생한 범죄에 대해서는 형을 정함에 있어 그 사건의 구체적 사정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가정폭력의 정도가 점점 심해진 점이 이 사건의 중요한 원인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의 가족과 지인, 피해자의 유족들까지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그동안 남편과 자식을 위해 헌신한 점,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어 "알코올 중독을 개인의 음주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는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일반 폭력과 달리 가족이라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반복·심화된다는 점에서 이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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