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L 링크 : |
---|
우화
로프 한 뭉치를 메고 가는 사내가 있었다
맨 처음 만난 이에게 올가미 하나 잘라 팔고, 매듭 하나를 값으로 받았다
올가미를 산 사람은 단 한 개의 매듭이 없어 죽지 못했다
목동에게 울타리를 끊어 팔고, 네 개의 목책을 받았다
뿔뿔이 흩어진 양들은 낯선 피리를 따라갔다
주저앉은 한숨에게 신발 끈과 허리띠를 잘라 팔았다
그래프를 팔고 빨강 눈금을 값으로 받았다
물그림자에게 낚싯줄을, 벌목장에게 나이테를, 사건에는 금지구역 줄을 잘라 팔았다
샛길이 사내를 따라 뛰어가고 숲이 서둘러 그를 은폐했다
올가미, 울타리, 신발 끈, 허리띠, 그래프, 낚싯줄, 나이테, 금지구역 줄 모두
사내를 거쳐 간 것들
확성기를 빠져나온 붉은 목소리가 어느 오후를 깨웠다
만물트럭 운전석에 낯익은 그 사내가 있었다
- 시, '우화'
로프 한 뭉치로 이렇게 많은 것을 얻었네요. 그 사내, 혹은 사기꾼은.
그에게 물건을 내주고 새로운 것을 산 사람들은
먼저 팔아버린 것들의 부재로 다시, 그를 찾지요.
이미 부자가 되어 돌아온 그 사내로부터 찾는 것은
중요한지도 모르게 잊어버린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들입니다.
시끄러운 요즘,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 일에 휘말리곤 하는지요.
얼마나 기가 막힌 일들을 겪곤 하는지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무엇일까요.
- 최연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