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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순대랠라 조회 수: 15 PC모드
세상은 못 구해도 너의 일상은 구해줄게
작은 탐사, 큰 결실 #소탐대실
■ 1년 만에 평창 롱패딩이 사라졌다
추운 날씨엔 롱패딩 만한 게 없다. 전신을 착 감싸주는 포근함에 요즘은 나도 또 다른 내 피부라고 여기며 늘 입고 다닌다. 몇 년 전까지 롱패딩 없이 겨울을 지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롱패딩 이야기를 하자면 이 제품을 빼놓을 수 없다. 재작년 말,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기념해 롯데백화점이 출시한 롱 다운 벤치파카다.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평창 롱패딩'이다. 지난겨울 롱패딩 열풍에 제대로 불을 지핀 주역이다.
근데 이상하다. 이번 겨울은 평창 롱패딩을 본 기억이 없다. 지난겨울만 해도 최고의 인기 아이템이었는데 지금은 거리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평창 롱패딩은 왜 자취를 감췄을까? 사람들이 안 입는 건가, 그저 내가 못 본 건가. 마침 평창동계올림픽 1주년이라고 한다. 그때를 회상하며 평창 롱패딩, 소탐해보자.
■ 평창 올림픽보다 더 뜨거웠던 평창 롱패딩
다들 기억하실 거다. 평창 롱패딩은 사고 싶다고 그냥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매장 문이 열리기도 전에 새벽부터 줄을 서야 했다. 선착순으로 번호표를 받아야 구입이 가능한데, 이 골든 티켓을 받기 위한 각개전투가 펼쳐졌다.
정가에 웃돈을 얹어 중고거래하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평창 롱패딩을 추가 생산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었다.
올림픽 특수, 3만 장의 한정 수량, 가성비, 그리고 역대급 한파까지 평창 롱패딩의 흥행을 두고 다양한 원인 분석들이 나왔다. 산 이유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국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많았기에 저런 현상들이 나타난 것 아니겠나.
이렇게 많은 이들이 원하고 바랬던 평창 롱패딩, 지금은 다 어디에 있을까?
■ 거리 관찰 ① 상암동
직접 찾아봐야겠다. 점심시간에 JTBC 로비로 갔다. 점심 먹으러 나가는 사람들의 행렬 중 롱패딩이 자주 눈에 띈다. 하지만 평창 롱패딩은 없었다.
그래서 거리로 나갔다. 먼저 상암동이다. 방송국이 많이 모여 있는 만큼 롱패딩 복장을 쉽게 볼 수 있는 동네다. 점심 시간대 2시간 동안 상암동 중심 거리를 관찰했다.
2시간 동안 지나간 행인은 3,707명, 그중 32%(1193명)가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그럼 평창 롱패딩을 입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됐을까?
없다. 현장에서도 찾아보고, 나중에 촬영본도 살펴봤지만 단 1명도 없었다. 적어도 서너 명은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 외의 결과다.
■ 거리 관찰 ② 홍대입구역
다음날, 유동인구가 더 많은 홍대입구역으로 가봤다. 방법은 전과 같다.
2시간 동안 지나간 행인 5,581명 중 롱패딩을 입은 건 2,321명, 무려 42%가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상암동보다 더 높은 비율이다. 그럼 평창 롱패딩은 몇 명이나 있었을까?
4명이다. 한 명도 없었던 상암동에 비하면 많긴 하다. 하지만 2,321명 중 4명, 0.17%에 불과하다. 딱 봐도 매우 작은 비중이다. 이게 어느 정도인지 굳이 예를 들자면, 지난 2017 수능 6월 모의고사에서 국어 만점자 비율이 0.17%였다. 그리고 부산 동구 주민이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약 0.17%를 차지한다(2018년 기준).
■ 우연히 평창 롱패딩을 마주칠 확률은?
왜 이렇게 평창 롱패딩을 찾아보기 힘들까? 혹시 한정판이라 물량이 적어서 그런 건 아닐까?
우리가 길을 걷다 평창 롱패딩을 발견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계산해보자. 통계물리학자인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를 찾아갔다.
패딩을 사서 한 철만 입고 버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지난겨울 평창 롱패딩을 산 사람이 이번 겨울에도 그대로 입는다는 전제로 계산해봤다.
지난겨울 전체 롱패딩 판매량은 업계 추산 약 100만 장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평창 롱패딩은 총 3만 장이 판매됐다. 3%다.
이 비율을 홍대입구역에 대입해보자. 소탐대실 거리 관찰에서 롱패딩을 입었던 사람은 2,321명. 이들의 3%는 약 70명이다. 근데 실제로 평창 롱패딩을 입은 사람은 총 4명이었다. 66명은 이제 평창 롱패딩을 안 입는 거다. 설령 다른 롱패딩을 하나씩 또 샀다 치더라도 35명은 나왔어야 한다.
이번엔 다른 가정을 해보자. 이번 겨울 전체 롱패딩 판매량을 역추적하는 거다. 홍대입구역에서 발견한 평창 롱패딩 4명이 확률상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평창 롱패딩의 전부라고 치자. 그럼 위 수식대로 계산해보면, 이번 겨울 롱패딩은 1,640만 장이 팔렸어야 한다. 롱패딩은 사랑이라지만, 이건 너무 비현실적인 숫자다.
이러나 저러나, 지난겨울 평창 롱패딩을 샀던 사람들이 지금은 잘 안 입는다는 결과밖에 나오지 않는다.
■ 왜 안 입나 ① 안 추워서?
왜 평창 롱패딩을 입지 않을까?
혹독하게 추웠던 지난겨울, 평창 롱패딩은 구스 소재임에도 14만 9천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겨울나기 아이템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럼 지금은 그때만큼 춥지 않아서 잘 안 입는 것일까?
글쎄. 지난 1월 서울 평균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던 날은 총 20일, 절반 이상이다. 게다가 소탐대실이 상암동과 홍대입구역으로 거리 관찰을 나갔던 날은 최저기온이 각각 -7.2 °C , -9.4 °C 였다. 저번 겨울보다 덜 추운 거지, 안 추운 건 아니다.
참고로 지난해 소탐대실은 패딩 입기에 적절한 기온이 몇 도인지 알아본 적이 있다. 당시 실험에 따르면, 영상 5 °C 에도 롱패딩을 입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피실험자는 춥다고 느꼈다.
[소탐대실] 오늘 패딩 입어도 돼? ▶ http :// bit . ly /2 HEovlv
■ 왜 안 입나 ② 롱패딩 유행이 지나서?
아니면 롱패딩 자체의 인기가 식어 평창 롱패딩도 사라진 걸까? 이것도 딱히 모르겠다. 평창 롱패딩이 눈에 띄지 않을 뿐, 다른 롱패딩은 거리에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앞서 거리 관찰 결과를 다시 살펴보자.
유동인구 중 상암동은 32%, 홍대입구역은 42%가 롱패딩을 입었다. 짧은 패딩, 코트, 야상 등 그 어떤 겨울 외투보다 훨씬 많았다. 이것만 봐도 롱패딩은 여전히 건재하단 걸 알 수 있다.
■ 왜 안 입나 ③ 평창 롱패딩 약효가 떨어져서?
결국 평창 롱패딩을 향한 관심이 식은 걸까? 언제까지 평창 롱패딩이 주목받았는지 확인해보자. 우리는 중고나라의 게시글을 통해 유추해보기로 했다. 열광하는 물건일수록 사려는 사람도, 팔려는 사람도 많을 테니 말이다.
2017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14개월간 올라온 평창 롱패딩 거래 게시글 수를 분석했다. 그중에서도 지난겨울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자.
11월 중순, 온·오프라인 매진 행렬과 동시에 게시글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7일, 온라인 쇼핑몰에 더는 추가 입고가 없을 거란 공지가 뜨자 게시글이 급증했다. 이때부터 구매 대행을 거래하는 글도 심심치 않게 올라왔다.
최고점을 찍은 건 11월 22일이다. 마지막 7천 장의 물량이 풀렸던 오프라인 추가 판매 첫날이다. 이날만 게시글이 300건이 넘었다. 파는 사람, 사는 사람, 교환하려는 사람 모두 많았다. 특히 산다는 사람이 판다는 사람보다 13% 정도 더 많았다. 오프라인 구매에 실패해 웃돈을 주고라도 물건을 구하려는 소비자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오프라인 2차 판매와 3차 판매일에 맞춰 게시글이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 3차 판매 이후 점차 게시글 수가 감소하더니, 2018년으로 넘어가면서 그래프는 바닥에 가까워졌다. 평창동계올림픽 기념상품임에도, 올림픽 기간에 게시글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후도 마찬가지다. 2018년 가을, 기온이 떨어지면서 게시글 수도 살짝 늘어났지만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결국 평창 롱패딩이 제대로 주목받았던 기간은 기껏해야 한 달. 많은 이들이 매진 행렬에 동참하고 열광하던 딱 그 시기뿐이다.
■ 평창 롱패딩도 패딩인데 입어야죠
보다시피 평창 롱패딩의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는 유행민감도를 원인으로 꼽았다. "유행이란 시의적절성이 중요한데, 평창 올림픽은 많이 지나버린 행사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제품 진부화 속도가 다른 나라보다 빠르다. 그러다 보니 이미 유행이 지났다는 생각에 평창 롱패딩을 입으려는 사람들도 많이 줄었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작년 가을부터 평창 롱패딩을 입어도 되나 고민하는 흔적들이 커뮤니티 곳곳에서 발견됐다. 하긴 그렇다. 유행 지난 옷을 내키지도 않는데 억지로 입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한 철 만에 사라지기엔 아쉽단 생각이 든다. 롱패딩은 여전히 유행 중인데, 평창 롱패딩도 그냥 입으면 안 되나?
마침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다 해답을 찾은 사람이 있다. 대학생 전현태(27) 씨다. 재작년 공항 팝업스토어에서 평창 롱패딩을 샀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도 잘 입고 다녔다. 문제는 이번 겨울부터였다. 검은색 롱패딩 사이에서 색도 튀고, 평창 롱패딩을 알아보는 시선이 신경 쓰여 입지 않았다고 한다. 강원도에 놀러 갈 때나 입은 정도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평창 롱패딩을 잘 입고 다닌다. 해결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사람들이 본인 패딩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안 거다.
"그냥 하나의 롱패딩으로 생각하면 쉽다. (사 놓고 안 입는 분들은) 옛날 것 같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 거에 사람들이 신경을 안 쓴다는 걸 알면 잘 입고 다닐 수 있을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은 롱패딩 디자인이나 색상이 대부분 비슷하다. 등과 팔에 있던 ' Passion Connected ' 패치도 튀지 않는다. 다른 제품도 다 그만 그만한 위치에 패치가 붙어있다. 이제 평창 롱패딩도 무난한 롱패딩 중 하나가 된 거다. 우리가 인파 속에서 평창 롱패딩을 찾을 때 꽤나 애를 먹은 이유다.
■ 세탁소 비닐 속에 잠든 평창 롱패딩을 깨우자
평창 롱패딩, 지난겨울만 해도 없어서 못 팔던 옷이었다. 밤새 백화점 앞에서 줄을 서고, 달리고, 고군분투하던 모습들이 지금은 신기루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유행을 무시하라는 것도, 근검절약을 요구하는 것도, 뒤늦게 평창 롱패딩을 홍보하려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저 한 철 입고 끝내기엔 여러모로 아쉬운 이 옷, 다시 한 번 돌아보자는 거다. 입을까 말까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도전해보시라. 겨울이 아직 많이 남았다.
올해 소탐대실이 발견한 평창 롱패딩은 4명이다. 내년엔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소탐대실 끝.
#저희는_작은_일에도_최선을_다하겠습니다
기획·제작 : 김진일, 김영주, 김지훈, 박진원,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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