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당국이 군대 내 동성애자 색출 및 형사처벌을 지시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상부의 지시를 받은 육군 중앙수사단(중수단)은 올해 초부터 기획 수사를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반인권적 언행은 물론, 협박과 회유 등을 했다는 증언이다.
군인권센터(소장 임태훈)는 13일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올해 초 복수의 피해자들로부터 충격적인 제보를 받았다”며 이 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중수단은 올해 초 정보통신망법 관련 사건을 수사하던 중 피의자가 동성애자임을 우연히 인지하고, 이를 통해 파악한 또다른 동성애자 군인들을 추궁하는 방식으로 수사를 확대해왔다. 사실상 '별건 수사'를 벌인 셈이다.
중수단은 군대 내 동성애자들을 ‘색출’하듯 마구잡이식 수사를 벌였다. 별다른 물증 없이 동성애자라는 이유 만으로 이들을 '식별'해 수사대상에 올렸다는 것.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기획수사로 일망타진해보자는 식으로 굴비 엮듯 수사를 벌이고 있다”며 “(군 당국이) 이렇게 대규모로 동성애자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군 당국이 동성애자 색출에 나선 근거는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처벌하도록 규정한 군형법 92조6(추행) 조항이다. 임 소장은 “이 조항은 위헌 소지가 높고, 동성애자(의 항문성교)만을 특정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엄청난 마녀사냥”이라고 지적했다.
또 임 소장은 “통계가 거의 잡히지 않을 만큼 이 조항으로 동성애자들이 처벌 받은 사례는 극히 드물다”며 “(위헌 논란이 있는) 군형법 92조6 조항이 존치돼야 한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기획수사를 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현행 부대관리훈령(국방부 훈령 제1932호)에는 "동성애 성향을 지녔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한다"(제253조1항), "지휘관 등은 병영 내 병사들에 대하여 성지향성 설문조사 등을 통해 적극적인 동성애자 식별 활동을 할 수 없다"(제254조1항)고 명시되어 있다.
군인권센터는 수사 과정에서 “총체적 인권침해”가 자행됐다고 지적했다. 수사관들이 부대 내 ‘아웃팅’ 가능성을 언급하며 협박을 가하는 한편, 자백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동성 성관계 여부는 물론, 성관계시 체위, 콘돔 사용 여부, 첫 경험 시기 등을 집요하게 추궁했다는 것.
군인권센터가 취합한 피해자들의 제보에 따르면, 수사 관계자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성정체성을 다시 찾았으면 좋겠다”거나 “남자랑 하면 좋나요?”는 등 성적 모멸감을 주는 발언을 일삼았다. 수사관들이 ‘게이 데이팅 어플리케이션’에 접속해 군인들을 상대로 함정 수사를 벌인 정황도 확인됐다.
군인권센터는 현재까지 15명의 현역 장교 및 부사관이 피해를 입었으며, 현재 40~50여명이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13일 오전에는 한 군인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돼 출장 중에 체포된 것으로 파악됐다.
군인권센터는 “수사팀이 A4용지 400장에 이르는 개인정보를 확보하였고, 동성애자로 추정되는 수십 명의 군인 사진을 인쇄하여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동성애자 관련 수사는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게 군인권센터 측의 판단이다. 임 소장은 “누구의 지시를 받았냐고 하니까 육참의 결재사안이라고 말했다는 제보가 있다”며 “복수의 진술과 정황을 종합해볼때 육군 참모총장의 지시가 있지 않고서는 이런 식의 기획수사는 절대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관련법상 추행죄는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징역 2년형 이하의 처벌이 내려질 수 있다. 군인권센터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멀쩡히 복무하던 군인이 군복을 벗고 감옥에 간다는 것은 러시아, 체첸, 일부 중동 국가 등 인권 후진국에서 동성애자를 구금, 고문, 처형하는 일과 전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군인권센터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4회에 걸쳐 UN인권이사회 이사국을 연임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고 믿기 힘든 야만이자 광기”라며 “유엔인권이사회에 참석해 이 사태를 국제 사회에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또 “장준규 육군 참모총장은 더 이상 육군을 지휘할 자격이 없다”며 “사태의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장준규 육군참모총장. ⓒ뉴스1
이에 대해 육군본부는 입장문을 내고 "소셜네트워크(SNS)상에 현역 군인이 동성 군인과 성관계하는 동영상을 게재한 것을 인지, 사실관계를 확인해 관련자들을 식별 후 관련 법령에 의거 형사입건해 조사 중"일 뿐이라며 '색출' 사실을 부인했다.
육군은 "관련수사는 인권과 개인정보를 보호한 가운데 법적절차를 준수해 진행되고 있다"며 "군내 동성애 장병에 대해서는 신상 관련 비밀을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수사에 협조적이 경우 대대장과 중대장에게만 피해자의 신원을 통보하고, 수사에 비협조적이면 (소속 장병의) 사단장을 비롯해 인사라인까지 모두 통보해버린 것으로 파악됐다"는 군인권센터 측 설명과 배치된다.
육군은 또 "현역 장병이 동성 군인과 성관계 하는 것은 현행 법률을 위반한 행위로, 군은 군 기강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 동성 성관계를 군형법상 '추행죄'로 처벌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육군은 엄정한 군기를 유지하기 위해 군기강 문란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에 의거해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군인권센터를 비롯한 인권단체들은 이 조항이 상호 합의 하에 벌어진 동성 간 성적행위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해왔다. 이 조항을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도 여러 차례 발의된 바 있다.
또 "동성애자 병사의 병영내에서의 모든 성적행위는 금지된다"(국방부 훈령 제1932호 제253조2항)는 조항이 있긴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부대 내 성관계 등에 대한 물증 없이 육군 중수단이 군내 동성애자에 대한 광범위한 '식별'에 나섰다는 게 군인권센터의 설명이다.
임 소장은 "영내, 영외 관계 없이 군인과 성관계를 했냐, 구강성교를 했냐고 지속적으로 집요하게 물어본 것으로 파악됐다"며 "피해자들이 범죄 성립 여부나 처벌 기준에 대한 법적 지식이 없는 경우가 많으니 그걸 악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동성애자를 '색출'하고, 성경험 등에 대해 추궁하는 행위는 지휘관 등에 의한 동성애자 '식별'활동을 금지한 조항(제254조1항)과 동성애자를 상대로 "성 경험·상대방 인적 사항 등 사생활 관련 질문을 금지한다"(제154조 2항)고 규정한 것에 각각 위배된다.
잘보았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