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우연찮게 누렇게 빛이 바랜 노트에 푸른 잉크로 적혀 있는
디킨슨의 '내가 만일'이라는 시를 보곤 맺혔던 마음을 푼다.
내가 만일
병든 생명 하나 고칠 수 있거나
한 사람의 고통을 진정시킬 수 있거나
할딱거리는 새 한 마리를 도와서
보금자리로 돌아가게 해줄 수 있다면
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소녀라고 부를 수 있었던 시절에 적어놓은 것 같은데...
아마 삶의 지표로라도 삼으려 했었나보다.
인생에 대해 무한한 환상에 빠져 있었을 때니 한 사람뿐이랴.
어른이 되면 여러 사람, 아니 모든 생명체의 고통까지도
진정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보다.
하지만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누구의 고통을 진정으로 진정시켰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 송혜영, 수필 '고마워 곤줄박이야' 중에서 -
나이가 들면, 거창한 일을 하거나 마음 씀도 클 거라 생각하지만
소녀 적보다 열정이나 환상은 많이 줄어있음을 문득 깨닫습니다.
그렇지만, 보다 가까워진 현실에서
더욱 깊어지는 포용과 넉넉함, 그리고 사랑을 갖는 것일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