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응해 맞불 카드로 부상했던 한일군사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폐기 카드가 22일 현실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환영식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와 8초간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청와대는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연 뒤 "지소미아 협정을 지속시키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청와대는 김유근 NSC 사무처장(국가안보실 1차장) 명의로 “정부는 일본 정부가 지난 8월 2일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한·일 간 신뢰훼손으로 안보 상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이유를 들어 화이트국가(안보우호국)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해 양국 간 안보협력 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한 것으로 평가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안보상 민감한 군사정보 교류를 목적으로 체결한 협정을 지속시키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앞으로 외교 경로를 통해 일본 정부에 협정의 종료(2019년 11월 23일)를 통보할 예정이다. 이로써 '지소미아 카드'는 대일 반격 카드로 수면 위로 떠오른 7월 18일 이후 36일 만에 현실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서 열린 국립대 총장 초청 오찬에서 김영섭 총장협의회장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①시작=지소미아는 지난 7월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5당 대표 회동에서 처음 제기됐다. 이 자리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한국에 대한 일본의 화이트국가(안보우호국) 배제는 한국을 안보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인 만큼 지소미아 파기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하면서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7월 1일 한국 반도체 소재부품에 대한 수출규제 방침을 밝히고, 이어 8월 2일 화이트국가 배제 말이 나오던 때였다. 이에 배석한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지금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상황에 따라 재검토를 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이때만 해도 지소미아는 ‘유지’ 쪽에 더 가까웠다. 여권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심 대표 요구에 대해 문 대통령은 ‘아직 검토하고 있지 않고, 그 이후 상황에 따라 판단할 문제 아니냐, 추이를 보자’ 정도로 말씀하셨다”고 설명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논란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②증폭=지소미아가 정부 차원의 ‘카드’로 해석되기 시작한 것은 다음 날(7월 19일)부터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전날 정 실장 발언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주고받는 정보의 양적 측면과 질적 측면을 모두 고려해 지소미아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모든 옵션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다.
정 실장의 “기본적으로 유지 입장”이라는 데서 뉘앙스가 분명히 바뀌었다. 이에 앞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18일(현지시간) 중앙일보 등 언론 질의에 “미국은 한ㆍ일 지소미아를 전폭 지지한다”는 입장을 낸 상태였다.
③확산=‘대일 반격카드’로 지소미아가 공개적으로 거론된 것은 국회 외교통일위 전체회의(7월 30일)였다. 여당 의원들은 아예 폐기를 주장하고 나섰다. “원칙에 따라 당연히 파기해야 한다”(심재권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본이 안보상 이유로 화이트국가 배제를 하겠다면서 지소미아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다”(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라고 했다.. 여당 의원들의 ‘화력 지원’에 힘 입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틀 뒤인 1일(현지시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8월 1일)에서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상을 만나 지소미아 재검토 의사를 전달했다. 당ㆍ정ㆍ청이 자연스럽게 지소미아 카드를 띄운 셈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일 오후(현지시간)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외교장관회담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기념촬영 후 강경화 장관과 고노 다로 외무상을 향해 손짓을 하고 있다. [뉴스1]④파기 강행=그럼에도 일본은 화이트국 배제를 강행(8월 2일)했다. 한국의 '지소미아 재검토'에도 28일 시행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마지막 기회로 여겨졌던 21일(현지시간)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일본은 물러서지 않았다. 당·청이 지소미아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동안 주무부처인 국방부와 외교부 일선에서는 전전긍긍하는 기류도 감지됐다.
지소미아 자체가 갖는 상징적ㆍ전략적 가치가 적지 않았던 만큼, 이를 파기할 경우 '뒷 감당'은 일선 부처인 국방부와 외교부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소미아는 체결 단계부터 밀실협의 논란을 빚는 등 갖은 산고 끝에 2016년 11월 23일 맺어졌다. 지소미아 연장 결정 시기에 미 정부 고위급 인사들이 연쇄 방한했지만 청와대의 파기 결정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7월 23~24일), 마크 에스퍼 신임 국방장관(8월 8~9일),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8월 20~23일) 등 백악관ㆍ국방부ㆍ국무부 고위 인사들이 줄줄이 한국을 찾아와 한 목소리로 "한ㆍ미ㆍ일 공조 체제"를 강조했다. 한 소식통은 “미국이 '지소미아를 깨라, 마라' 대놓고 얘기하는 것은 내정 간섭이 될 수 있어 자제했지만, 공통적으로 한ㆍ미ㆍ일 공조를 강조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지소미아를 흔들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종전일인 15일 도쿄에서 열린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했다. [로이터=연합뉴스]그러나 청와대는 이날 "일본 정부가 일명 '백색 국가 리스트'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함으로써 양국간 안보협력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한 것으로 평가했다"며 파기 이유를 밝혔다. 일본이 한국을 안보우려국으로 지정한 만큼 한국이 일본을 안보우호국으로 간주하기 곤란하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 3.1 독립선언서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