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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피 조회 수: 1195 PC모드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블루투스 이야기
근거리 무선 통신의 대표주자
와이파이(Wi-Fi) 만큼이나 대중에게 잘 알려진 통신 규격인 블루투스(Bluetooth)는 주로 무선 이어폰 같은 액세서리 연결에 활용됩니다. 그만큼 편리한 기술이지만 원리나 기원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인데요. 블루투스란 명칭이 정말 파란 이빨(Blue Tooth)은 아닐까라는 궁금증을 한 번쯤 가져본 적도 있을 것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블루투스의 어원에는 약간의 비하인드스토리가 있기 때문이죠. 이번 시간에는 가깝고도 먼 블루투스의 유래와 원리, 소소한 궁금증들에 대해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블루투스란 명칭은 10세기 덴마크의 왕, 하랄 블로탄(Harald Blåtand)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997년 인텔의 엔지니어인 짐 카다크(Jim Kardach)가 자신이 읽던 소설에 등장하는 하랄 왕에 영감을 받아 제안한 명칭인데요. 사실 블로탄의 원래 뜻은 ‘검은 피부의 영웅’입니다. 이를 영어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엉뚱하게도 파란 이빨이란 뜻의 블루투스가 된 거죠.
블루투스의 배경 이야기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 ‘킹스맨 : 골든 서클’에서도 등장했습니다. 주인공이 여자친구의 아버지인 스웨덴 국왕과의 식사에서 일종의 교양 시험을 거치는 장면의 일부인데요. 국왕이 블루투스에 대해 묻자 “덴마크의 전설적인 왕 이름을 딴 것이며 (중략) 블루투스 로고는 블로탄 왕의 이니셜을 룬 문자로 쓴 거죠.”라고 비밀스레 커닝한 내용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재미있는 장면이었죠.
속설에는 하랄 왕이 블루베리를 즐겨 먹어 이빨이 파랬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유럽에 블루베리가 전해진 건 20세기 무렵이므로 천년이나 이른 시기에 살았던 그는 블루베리를 본 적도 없었을 테니까요. 블루투스란 명칭이 워낙 특이하다 보니 생겨난 루머인 듯하네요. 어쨌든 누구나 쉽게 기억할 수 있는 독특한 네이밍인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블루투스를 이해하려면 그 기초가 되는 전파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요. 모든 전파 통신에는 정해진 주파수 영역이 있습니다. 주파수란 전파가 이동하는 공기 중 도로와 같은데요. 자동차 도로에도 각 차선 별 용도가 다르고 별도의 전용로가 있듯이 주파수도 영역마다 제한된 할당 영역이 존재합니다. 이는 서로 다른 무선 전파를 용도별로 분리해 서로 간의 간섭 현상을 줄이기 위함이죠.
그런데 블루투스는 와이파이와 동일한 2.4~2.485GHz의 주파수 대역을 사용합니다. 이 대역이 산업, 과학, 의료 용도 등에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ISM(Industrial Scientific and Medical equipment)에 속하기 때문인데요. 블루투스는 와이파이와 같은 주파수를 사용하며 발생하는 전파 간섭 문제를 주파수 도약(Frequency Hopping)이란 방식으로 최소화했습니다.
주파수 도약이란 쉽게 말해 차선을 바꾸는 행위와 비슷합니다. 블루투스는 주파수를 79개의 채널(차선)으로 나눈 뒤 잘게 조각낸 데이터(차량)로 분할해 전송하는데요. 이때 초당 1600번의 채널 도약(차선 이동)를 통해 매 순간 가장 여유로운 채널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같은 주파수 내 다른 통신망과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거죠. 물론 이런 방식도 지하철 등 와이파이 사용이 많은 장소에서는 채널의 전 구간 정체로 인해 끊김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블루투스 액세서리 중에는 유독 사용 범위를 10m 이내로 표기하는 제품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블루투스의 사용 거리가 10m인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블루투스에는 전파 세기를 나타내는 4가지 클래스(Class)가 있는데요. 여기서 10m까지 전파를 송출하는 규격은 클래스 2에 해당됩니다. 그 아래 클래스 3은 1m, 클래스 4가 0.5m, 반대로 가장 높은 클래스 1은 최대 100m까지도 신호 전송이 가능합니다.
클래스 | 출력 | 도달 거리 |
Class 1 | 100mW | 100m |
Class 2 | 2.5mW | 10m |
Class 3 | 1mW | 1m |
Class 4 | 0.5mW | ~0.5m |
기왕이면 100m를 지원하는 클래스 1로 만드는 게 낫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호를 더 멀리 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합니다. 클래스 2와 1만 비교하더라도 산술적으로 40배의 출력 차이가 나는데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무선 액세서리의 사용 범위는 10m 이내입니다. 결국 블루투스 액세서리의 가장 효율적인 전력 소모와 전송 범위가 바로 10m의 클래스 2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블루투스의 장점이라면 무엇보다 탁월한 호환성이 있습니다. 블루투스는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블루투스가 탑재된 유무선 디바이스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합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은 물론이고 요즘은 가전제품에도 블루투스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요. 이는 기기 간 연결이 쉬우며 한 번 연결하고 나면 자동으로 연결되는 편리한 특징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송출 거리 대비 낮은 전력 소비도 블루투스의 장점입니다. 블루투스 개발자들은 특히 저전력 기술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버전이 올라갈 때마다 전력 소모는 줄면서 속도와 안정성은 크게 향상되고 있죠. 블루투스가 근거리 무선 통신의 대표 주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작은 무선 이어폰으로도 긴 시간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도 모두 블루투스의 저전력 기술 덕분이죠.
장점이었던 손쉬운 연결은 반대로 보안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가까운 예로 올해 9월 보고된 블루본(Blue Borne) 취약점이 있는데요. 사용자가 블루투스를 켜 놓았을 시 해커가 악성코드를 심은 블루투스 기기를 들고 접근만 해도 공격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제기됐습니다. 즉, 기기 간 블루투스 페어링(Pairing, 연결) 과정을 건너뛰도록 조작한 뒤 사용자 기기에 몰래 접근해 원격으로 악성코드를 심는 방식으로 공격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블루본 공격에 노출당하면 사용자는 자신도 모르게 데이터를 유출 당하거나 디도스 공격의 좀비 단말기로 사용될 수 있는데요. 해당 문제는 안드로이드의 9월 5일 자 보안 업데이트, IOS 10.3.3 업데이트, 윈도우7 이상 최신 업데이트를 통해 해결됐지만 공식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는 많은 블루투스 기기는 여전히 이 취약점에 노출돼 있습니다. 쉽고 편리하게 쓸 수 있다는 장점에 따라붙는 취약한 보안, 미래를 바라보는 블루투스라면 꼭 해결해야 할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블루투스는 1994년 스웨덴의 에릭슨이 처음으로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인텔과 IBM, 노키아와 도시바 등 5개 회사가 개발에 참여했으며 블루투스 SIG(Special Interest Group)이라는 대표 그룹이 창설됐죠. 현재는 마이크로소프트, 모토로라, 애플, 노르딕 세미컨덕터가 합세한 총 9개 기업이 블루투스 개발 감시와 인증 관리에 앞장서고 있는데요. 이외에도 30,000개 이상의 회원사가 있으며 1999년 첫 공개 후 지금까지 꾸준한 버전 업데이트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블루투스 1.0은 1999년 발표 후 2003년까지 1.3 버전까지 업데이트됐습니다. 당시 1.x 버전은 최대 전송 속도가 723kbps에 불과해 제한적인 사용만 가능했는데요. 이후 2004년 2.0 버전에서 전송 속도를 3Mbps까지 끌어올리고, 2.1에서는 드디어 손쉬운 페어링을 지원하는 SSP(Secure Simple Pairing)이 추가됐습니다. 특히 블루투스 2.x는 초기 스마트폰과 태블릿, 노트북 등에 본격적으로 탑재되며 블루투스 대중화에 앞장선 버전이죠.
블루투스 3.0은 HS(High Speed) 환경을 충족하는 조건에서 최대 24Mbps까지 속도가 향상된 버전으로 속도 한계의 돌파구를 열었습니다. 이후 4.0에 이르러 Bluetooth Low Energy(BLE)라는 저전력 프로토콜로 전력 소모를 10분의 1로 낮추는 데 성공하는데요. 블루투스 제품 중 ‘HS’ 표기가 붙은 것은 빠른 전송 속도를, ‘LE’는 전력 효율에 중점을 둔 제품으로 구분하게 됩니다. 이외에 ‘BR/EDR’은 기존 2.1 버전까지의 기술을 활용한 블루투스 클래식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블루투스 4.1은 무선 안정성 향상에 중점을 둔 버전입니다. 처음 설명한 와이파이 외에도 인접한 다른 통신망과의 간극을 조정해 주파수 간섭을 크게 줄였으며, 블루투스 기기 간의 전송 품질도 보다 효율적으로 개선했습니다. 또한 연결이 잠시 끊어져도 자동 재연결 기능이 추가돼 사용 편의가 증가했습니다. 여기에 128비트 AES 암호화를 지원함으로써 보안성도 다소 개선됐습니다.
2014년 12월 발표된 블루투스 4.2는 4.0 대비 2.5배 증가한 전송 속도와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데이터량이 10배 증가해 전반적인 송수신 품질이 향상됐습니다. 또 IPv6, 6LoWPAN 같은 통신 프로토콜을 통해 블루투스 기기가 직접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만들어 활용 범위가 커졌는데요. 예를 들어 사물인터넷 기기의 경우 블루투스의 저전력 혜택을 받으면서도 인터넷에 직접 접속할 수 있어 사용자가 원격으로 제어하거나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업데이트할 수 있다는 장점이 더해졌지요.
추가로 프라이버시 보호를 강화해 사용자 허락 없이 블루투스 기기의 위치를 추적할 수 없게 됐습니다. 다른 예로 이전까지는 상점 내 설치된 블루투스 비콘(Beacon)이 고객의 동선을 파악해 고객 데이터 분석에 활용하는 게 가능했는데요. 4.2부터는 위치 정보 수집에 사용자 허락이 요구되면서 스마트 시대의 주요 보안 쟁점인 위치 정보에 대한 보호 수준이 한결 높아졌습니다.
작년 12월 공개 후 최근 본격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블루투스 5.0은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대비한 맞춤형 규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같은 전력으로도 전송 거리는 4배, 데이터 전송 속도는 2배나 빨라졌는데요. 이 덕분에 블루투스의 한계로 지목되던 통신 범위에 숨통이 트이고 더 많은 정보를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모든 가전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스마트홈은 중앙에서 이를 관리할 허브(Hub)가 필요한데요. 도달 거리가 향상된 5.0 버전에서는 TV나 냉장고 혹은 공유기 허브 한 대만으로도 통합적인 관리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또 확장된 브로드캐스트 용량 덕분에 동시 접속이 가능한 기기 수가 늘어난 점도 수십 개 이상의 동시 연결이 필요한 스마트홈에서 꼭 필요한 변화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태어난 지 벌써 20여 년 가까이 된 블루투스. 지금은 처음 목표한 대로 근거리 무선 통신 규약의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는데요. 긴 세월 동안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시대 흐름에 맞춰 온 발 빠른 변화가 아니었을까요? 다소 황당하게 파란 이빨의 왕이 된 하랄 블로탄도 지금의 블루투스를 보면 내심 기뻐할 듯합니다. 천 년 전 검은 피부의 영웅이 지금은 무선 시대의 영웅이 됐으니 말이죠. 아마 블루투스를 대체할 기술이 나타날 때까지 꾸준히 회자될 이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