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 도곡동 땅, 모든 것의 시작
1-2편 요약
현대건설 사장이라는 샐러리맨 신화를 바탕으로 이명박은 정치에 입문한다. 그러나 각종 꼼수로 이뤄진 그의 성공의 탑은 선거법 위반 사례가 밝혀져 허물어진다.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피선거권 제한으로 묶여 야인으로 머물던 이명박에게 초선의원 시절 미국에서 만났던 젊은 교포 여변호사 에리카김이 나타나 친동생이라며 김경준이라는 금융전문가를 소개시켜준다
교포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김경준은 명문대를 나와 금융전문가로 화려하게 데뷔한다. 일본을 거쳐 아시아 주식시장에 진출한 김경준은 운명처럼 이명박을 만나게 된다. 성공에 몸이 달은 두사람이 의기투합하자 그들을 태운 욕망의 열차는 거칠것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법을 초월해 자신들의 돈과 권력을 위해 막나가는 행동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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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 도곡동 땅, 모든 것의 시작
1) 92년 대선을 통해 김영삼 정부가 탄생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시절부터 80년 신군부의 탄압때까지 줄곳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지만 90년 3당야합이라는 치명적 선택 때문에 정권의 정통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2) 정통성 콤플렉스가 있던 김영삼 정부가 꺼내든 조치는 이른바 3대 개혁안이다. 우선 군부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하여 정치군인을 숙청했다. 그리고 대통령 명령으로 금융실명제를 전격실시해 지하자금을 퇴출시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꺼내든게 바로 공직자재산공개에 관한 법이다
3) 공직자재산공개법이 만들어지자 청와대, 내각, 국회의원들의 재산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김영삼 대통령부터 먼저 재산을 공개하니 나머지 공직자들이 반대를 할 명분이 없어졌다. 재산공개 파문으로 당시 의전서열 3위 김재순 국회의장이 정계은퇴를 선언할 정도로 후폭풍이 컸다.
4) 여야 가릴것 없이 재산공개 파문속에 휘청거렸다. 당시 여당이던 민자당은 이런 정국상황을 주도하고자 당내에 재산공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여당의원부터 공개한 재산이 맞는지 확인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5) 재산공개 여파가 한창이던 93년 3월27일 세계일보는 다음과 같은 특종을 터트린다
"국회의원 재산공개에서 총재산 62억3240만원이라고 신고한 민자당 이명박 의원이 85년 현대건설사장재직 때 구입한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시각 150억원 상당의 땅을 처남 명의로 은닉한 사실이 26일 밝혀져 이번 재산공개에서 고의로 누락시켰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 의원은 현대건설사장에 취임한 77년부터 서울 강남개발붐이 시작되자 회사차원의 부동산투자를 해오다 85년부터 강남구 도곡동 165일대 현대체육관 인근 나대지 1313평을 개인적으로 구입, 부인 김윤옥씨(46)의 동생 재정씨(44·우방토건대표) 명의로 등기해 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6) 정리하자면 당시 초선의원이던 이명박의원이 공직자 재산공개법에 따라 재산을 공개했는데 도곡동 땅을 처남 김재정 명의로 숨겨놓고 재산공개 때 공개하지 않다가 당 진상조사특위에 걸렸다는 내용이다
7) 이것은 당시 김영삼 정부 청와대와 민자당 재산공개진상파악특위(위원장 권해옥)의 내사결과 확인된 사실이다. 93년은 부동산 실명제법이 도입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차명으로 부동산을 관리하는것은 불법이 아니었다. 그래서 언론들도 등기 절차상의 문제보다는 재산공개시 누락부분에 초점을 맞춰 보도를 했다.
8) 93년 9월이 되자 민자당은 임기초 개혁 드라이브는 이정도면 되었다고 판단해서 인지 재산공개 파문이 더 이상 확산시키지 않았다. 이명박은 애초 60억원대로 공개한 재산에 서초동 땅 (지금 청계재단이 있는 영포빌딩 땅)을 포함해 250억으로 재산공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징계를 피해갔다. (차명으로 가지고 있던 도곡동 땅은 수면 아래로 내려감)
9) 그러다가 95년 3월 당시 15대 국회에서 부동산실명제법이 만들어진다. 해당법이 7월 공포가 되자 이제 차명으로 가지고 있던 부동산은 정가의 화두가 되기 시작한다. 이제는 재산공개에 누락하면 안되는 상황으로 몰린것이다
10) 결국 그 도곡동 땅은 95년 9월 포스코개발에 팔린다. 이때 도곡동땅의 매매가격은 263억원. 무려 247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긴 셈이다.
11) 도곡동 땅을 포스코 개발에 팔 때 등기상 땅의 소유주는 이상은(이명박의 친형, 다스대표)과 김재정 (이명박의 처남, 김윤옥의 동생)이었다. 따라서 매각 대금 역시 두사람에게 전달되었다.
12) 다시 정리하면 도곡동 땅은 95년 6월 포스코건설에 263억원에 팔린다. 매각대금 가운데 양도소득세등을 지출하고 남은 돈 약 200억원은 95년 12월 만기5년 조건으로 3개 생명보험회사에 나눠져 맡겨진다.
13) 만기가 된 2000년 12월29일 김재정씨 명의 40억원의 보험환급금 62억8800만원과 이상은씨 명의 60억원의 원리금 94억6천만원 등 157억4800만원이 이상은씨 명의 계좌로 이체된다.
14) 이 돈은 계좌에서 빠져나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1년뒤 2001년 6월에 이상은씨 앞으로 다시 147억원이 입금된다. 이 사실은 07년 7월 당시 한나라당 후보 검증청문회에서 한 검증위원이 해당 계좌에서 본 내용이라면서 공개한 내용이다.
15) 다스는 2000년 12월28일과 30일 외환은행 경주지점에서 하나은행 삼성센터 지점으로 BBK 투자금 90억원을 나누어 송금한다. 도곡동 땅 매각대금 가운데 157억여원이 이상은씨 계좌를 빠져나가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시점이 바로 12월29일이었다.
16) 다스는 2000년 10월10일 53억원의 어음을 할인해서 그날로 50억원을 BBK에 송금하는 등 당시 자금사정이 빠듯한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스의 주택은행 주거래 계좌를 보면, 2000년 4월25일 이전까지 잔액이 몇십만원에 불과할 정도였다.
17) 그럼에도 다스가 190억원이라는 거금을 BBK에 투자하게 된 경위는 이 사건 실체를 규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다스 자체의 자금으로는 190억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BBK에 보낼 수 없다. 그렇다면 그돈은 바로 도곡동 땅 매각 대금?
18) 07년 8월 검찰은 이명박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된 중간 수사발표를 했다. 이날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이명박 후보의 도곡동 땅과 관련해 매입 및 매각 대금을 등기상 주인인 친형 이상은씨가 직접 관리하지 않고 제3자가 관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19) 검찰은 이명박의 친형 이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가 도곡동 땅을 자신들의 소유라고 주장하면서 매입자금 출처에 대해 골재채취 및 현대건설 납품이익, 젖소 판매 대금, 일본 식품회사의 사우디아라비아 수출 중개 수수료 등으로 7억 8천만 원을 조달했다고 해명했으나 객관적 증빙 자료가 전혀 없고 자료 제출조차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20) 또한 매각 대금 중 김재정씨의 몫은 본인 소유인 것은 확실하나 친형 이상은씨의 경우 이씨가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이 전혀 없고 100억 원이 넘는 거액의 돈을 금리가 낮은 채권 등 간접투자상품에 10년 이상 넣어둔것을 보면 제3자의 돈인거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21) 특히 02년 7월부터 07년 7월까지 매달 2천만~4천만 원씩 15억여 원을 97차례에 걸쳐 전액 현금으로 인출하는 등 매우 이례적 거래 양태를 보였다고 밝혔다. 이상은씨는 이에 대해 본인과 아들의 생활비 등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지만 15건이 해외 출국 때 인출됐고 자금관리인과 통화한 일이 없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이상은씨 본인의 돈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22) 검찰은 이번 수사 발표를 통해 서울 도곡동 땅 매각대금 사용처를 추적한 결과, 1995년 8월 이상은씨의 매각대금 중 7억9200만원이 다스의 유상증자 대금으로 납입되고, 2000년 12월에 10억원이 이상은씨가 다스에서 빼내어 쓴 돈을 갚는 ‘변제’ 형식으로 들어온 사실을 확인했다. 이 후보의 것이라는 강한 의심이 드는 도곡동 땅 매각대금이, 이 후보의 것으로 의심되는 다스로 유입된 것
23) 하지만 그렇다고 다스의 실질적 소유자가 이명박이냐 사건의 핵심에 대해서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혐의처분을 내렸다. 이떄 수사를 담당한 김홍일 3차장검사는 “다스가 ‘이 후보의 소유가 아닌 거 같다’가 아니라 다스가 ‘이 후보의 소유라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최재경 특수1부장도 “의심스럽지 않다는 게 아니고 증거가 안 나온다. 그래서 그 소유주가 이명박씨라고 볼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며 “할 수 있는 수사는 다 했다는 판단 아래 무혐의 처분했다”고 덧붙였다.
24) 다스가 누구 소유인가를 떠나 다스라는 회사가 정말 190억을 투자할 여력 있었나는 의문에 검찰은 말끔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다스의 회계자료를 보면, 1999년 말에 다스의 이익잉여금(당기순이익이 쌓인 돈)은 85억원이었다.
25) 다스가 BBK에 19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약을 맺은 건 2000년 3월이었다. 그해 연말까지 몇십억 단위로 BBK로 투자금이 건너가기 때문에, 2000년 말까지는 적어도 105억원이 들어와야 한다. 1987년 창사 이래 모은 85억원보다 더 많은 돈을 1년안에 벌어야 하는 것이다
26) 검찰은, 당시 다스가 가지고 있는 200억원을, ‘이익잉여금과 납품대금’이라고 설명했지만,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세상에 어떤 회사도 납품업체에 납뭄대금으로 주려고 가지고 있는 돈을 함부로 위험한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27) 결국 (당시 검찰은 끝내밝히지 못했지만) 다스 안으로 어떤 형태로든 돈이 들어와서 그것이 다스의 BBK 투자금이 되었다는 추론은 가능성이 상당한 것이라고 본다. 그런점에서 볼때 다스로 들어간 가장 가능성 높은 돈은 도곡동 땅 값이 아닐지 의심.
* 요약
도곡동땅 -> 매각 -> 다스 -> 투자 -> BBK, 이렇게 자금이 흘러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곡동 땅부터 다스, 그리고 BBK의 실질적 소유주는 아마도 이명박이 아닐까 라는 의심.
* 자료출처 : 한겨레신문, 위키피디아, 세계일보, 그밖에 개별취재
이거 정말 정리 잘된글이죠, 사실 bbk는 내용을 제대로 설명을 안해줘서 그렇지 알고나면
정말 문제많은건이라는건 누구나 다 알수 있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