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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행간을 쓰다.
봉긋한 촉이 투명한 햇살을 찍어 봄을 서술합니다.
푸른 행간 속 호흡이 가쁩니다.
매번 느낌이 다른 봄.
그때 읽은 봄과 지금 읽는 봄은 두께와 질감이 다릅니다.
반복해 읽는 오늘은, 잉여의 시간을 무릎에 내려놓을 사이도 없는 순간.
두툼한 추위를 벗지 못한 중절모들이
묵은 물억새가 짚어주는 길을 돋보기로 훑습니다.
봄볕을 쟁여 넣어도 더 이상 움이 트지 않는 구부정한 그늘들.
저기 물비늘은 쉼표입니다.
씩씩한 걸음들이 강보다 앞서 걸으며
팔을 느낌표로 내렸다가 다시 코끝 방점을 찍습니다.
부리 노란 몇 척의 물길에도 감정의 수심은 잴 수가 없습니다.
가만가만 흔들리는 물비늘들.
물 위를 걷는 그림자가 기다란 물살을 끌고 가네요.
문득 돌아보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는 길들.
그때 함께했던 젊음은 어느 페이지에 묻혔을까요.
계절을 소비하며 여기까지 온 나를 여전히 봄이라 불러도 될까요.
낡은 기억을 갈아입는 봄 한 권.
다시 들춰보는 순간이라는 봄입니다.
- 최연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