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우가 빠진 키움 마무리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는 오주원(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키움 히어로즈는 지금 마무리 투수 조상우 없이 경기를 치르는 중이다. 조상우는 오른쪽 어깨 근육 손상으로 6월 10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리그 세이브 부문 1위(18세이브)이자 평균 153km/h, 최고 159km/h의 광속구를 뿌리는 파이어볼러. 25이닝 동안 삼진 33개를 잡아낸 무시무시한 투수가 전력에서 빠져나갔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키움은 조상우가 빠진 뒤 치른 8경기에서 7승 1패를 기록했다. 이 기간 8회까지 앞선 경기에서 5승 무패, 1점 차 승부에서는 4승 무패로 조상우가 있을 때(8회까지 리드시 32승 2패, 1점 차 5승 10패)보다 오히려 더 좋은 성적을 거두는 중이다.
사실 지난 시즌에도 조상우가 있을 때(24승 25패)보다 이탈한 뒤(51승 44패) 더 뛰어난 승률을 기록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키움이다. 조상우와 한현희가 동시에 이탈한 2016시즌엔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둘이 합류한 2017시즌엔 탈락했다는 사실도 잊지 마시길. 키움은 다른 팀이라면 대형 악재로 여길 주력 선수의 부상 공백도 새로운 기회로 삼는 팀이다.
“세이브 상황과 홀드 상황 차이 못 느껴…빈 자리 채우는 게 베테랑 선수 역할”
오주원의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137km/h로 강속구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오주원은 뛰어난 제구력과 공격적 피칭으로 타자를 제압한다(사진=키움)
최근 8경기 키움의 연승 행진은 임시 마무리 역할을 맡은 베테랑 오주원의 호투 덕분에 가능했다. 오주원은 이 기간 4차례 세이브 상황에 등판해 단 한번의 실패도 없이 모두 세이브를 챙겼다. 세이브를 거둔 4경기 기록은 4이닝 1피안타 무4사구 5탈삼진 평균자책 0.00으로 완벽 그 자체다.
키움 장정석 감독도 오주원의 활약에 찬사를 보냈다. 장 감독은 “오주원이 조상우가 빠진 뒤 등판한 경기에서 흠잡을 데 없는 투구를 보여줬다”며 “팀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믿고 맡길 수 있는 선수다. 경기를 치를수록 투구 내용이 더 좋아지는 거 같아 만족스럽다”고 칭찬했다.
이에 대해 오주원은 특유의 덤덤한 표정으로 “솔직히 세이브 상황이나 홀드 상황이나 큰 차이를 못 느낀다”고 했다.
“어린 선수들이라면 몰라도, 저희 같은 (베테랑) 투수들에겐 똑같은 것 같아요. 세이브 상황이라고 큰 차이를 못 느낍니다. 특별히 긴장되지도 않아요. 저에겐 별 차이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오주원의 말이다. “등판 준비도 중간계투 때와 똑같이 하고 있어요. 장기적으로 볼 때 제가 계속 마무리 투수를 할 건 아니니까요.”
오주원은 최근 주어진 마무리 투수 보직이 ‘베테랑 선수의 역할’ 중에 하나라고 강조했다. “팀에 빈자리가 생기면 채워주는 게 베테랑 선수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매년 그런 마음으로 야구를 해왔어요. 누군가 빠지는 선수가 생기면 그 자릴 채우고, 그 선수가 돌아올 때까지 버텨주는 게 제 몫이라고 생각해요. 감독님도 그런 점을 기대하고 절 기용하시는 게 아닐까요.”
오주원이 생각하는 베테랑의 역할은 단순히 마운드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고참 선수라면 나가서 경기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팀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올 시즌 우리 팀 불펜 투수들이 왼손 오른손 할 것 없이 다들 잘 던지고 있잖아요. 후배들이 하나같이 다 잘해주고 있기 때문에, 저도 그렇고 주장 김상수 선수도 더 분발하게 됩니다.”
후배들을 치켜 세우는 이 멘트는 올 시즌 오주원의 성적을 보면 지나친 겸손처럼 보인다. 20일 현재 오주원은 평균자책 1.69로 리그 불펜 5위, 팀 내 1위에 올라 있다. 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WAR)도 1.02승으로 팀 내 1위, 불펜 WPA(추가한 승리확률) 0.70으로 팀 내 1위이자 리그 불펜투수 9위에 이름을 올린 오주원이다.
패스트볼 구속만 놓고 보면 평균 137km/h로 지난 시즌(136.4km/h)과 큰 차이가 없다. 던지는 구종도 패스트볼,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스플리터로 비슷한 레퍼토리를 구사한다. 그런데도 지난 시즌(평균자책 6.19)보다 월등히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오주원은 “컨트롤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야구를 오래 하다 보니 투수에게 제일 중요한 건 제구력이란 생각이 듭니다. 볼 스피드도 중요하지만, 컨트롤이 안 되면 살아남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제가 남들보다 느린 볼 스피드를 갖고도 오랫동안 야구를 할 수 있었던 비결도 제구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실제 올 시즌 오주원은 26.2이닝을 던지는 동안 단 5개의 볼넷만을 허용했다. 9이닝당 볼넷으로 따지면 1.69개, 타석당 볼넷도 4.7%로 리그 최상위권 기록이다. 전체 투구 중에 스트라이크 비율도 69.7%로 리그 5위(25이닝 이상 기준), 리그에서 가장 공격적인 피칭을 하는 투수가 바로 오주원이다. 타석당 탈삼진 비율도 22.4%로 수준급이다.
비록 패스트볼 구속은 조상우의 변화구(슬라이더 평균 137.4km/h)보다도 느리지만, 제구력을 동반한 공격적인 피칭으로 타자를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있다. 올 시즌 반발력을 크게 낮춘 공인구 도입에도 리그 9이닝당 볼넷은 3.54개로 지난 시즌(3.26개)보다 증가했다. 공 반발력이 낮아지고 장타 위험이 줄었는데도 여전히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는 투수 같지 않은 투수가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모닥불러’ 오주원의 공격적 투구가 더 많은 박수를 받아야 하는 이유다.
오주원 “마무리 욕심? 조상우 돌아올 때까지 버티는 게 내 몫”
마무리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지만, 오주원은 조상우가 돌아오면 다시 원래 자리인 중간계투로 돌아가 자신의 몫을 다할 생각이다(사진=키움)
마무리 투수 자릴 계속 지키고 싶은 욕심은 없을까. 오주원은 “상우가 돌아올 때까지 버텨주는 게 내 몫이라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제겐 홀드 상황이나 세이브 상황이나 똑같습니다. 홀드 상황에 나가서도 제 역할을 했었고, 지금은 상우가 없는 상황이니까 대신 마무리를 하고 있을 뿐이죠.”
오주원은 “마무리로 나가면서 조상우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새삼 알게 됐다”고 말했다. “마무리 투수라면 압도적인 퍼포먼스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무리 자리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상우가 돌아와서 마무리를 하는 게 팀의 미래를 위해서도 이상적인 그림이 아닐까요.”
개인 성적을 넘어 팀의 미래까지 고민하는 베테랑 오주원은 남은 시즌 목표도 ‘팀 성적’을 얘기했다. “팀이 매년 가을야구에 올라가긴 했지만, 좀 더 위로 올라가지 못해 아쉬웠던 게 사실입니다. 올 시즌은 우리 팀에 작년보다 더 나은 한 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부상 없이 시즌을 완주해서 제 몫을 다하고 싶습니다.”
오주원의 말을 들으면서, 2년 전 미국 스프링캠프 때 그가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당시 오주원은 주전 선수들의 부상 이탈에 대해 “이제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 선수들은 스스로를 믿습니다. ‘누가 하나 빠지면 어때, 우리가 더 잘하면 되지’ 이런 생각이에요. 그런 경험을 워낙 많이 해봐서 그럴까요. 선수 하나가 빠지면, 꼭 누군가 나타나서 그 선수만큼 해주더라구요. 그래서 별로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조상우가 없는 지금, 오주원은 자신이 얘기했던 바로 ‘누군가’의 역할을 해내는 중이다. 그것도 너무나 완벽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