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부터 해킹까지, 렌즈 포비아에서 벗어나는 법
올해 초, 미국의 한 가정에서 생후 4개월된 아기 방에 설치된 IP카메라에서 낯선 목소리로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아기의 부모가 놀라 불을 켜자 불을 끄라는 말과 함께 아기를 납치하겠다는 협박까지 이어졌다. 부모가 아기 방으로 뛰어올라 갔지만 다행히 방에는 아무도 없었고 아기는 자고 있었다. 그러나 범인은 여전히 잡히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 11월, 국내에서 반려동물용 IP카메라를 해킹해 불법 촬영한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일반 가정에서 반려동물 관리용으로 설치한 IP카메라 2912대를 해킹, 3만 9706회에 걸쳐 나체와 사생활을 녹화해 저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 아기와 반려동물을 살피기 위해, 혹은 도둑을 막기 위해 설치한 IP카메라나 웹캠이 되려 우리 가족에게 해가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 전 세계 곳곳에서 IP카메라 해킹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최근 화장실 몰카 등 불법 촬영 사건까지 잇따라 드러나면서 ‘렌즈 포비아’라는 화두가 되고 있다. 막연한 공포감에 짓눌리는 대신, 카메라 해킹을 예방하는 방법을 알아두자.
(*이미지 출처: shutterstock.com)
과민하다고 할 수 없는 렌즈 포비아, 왜?
#1. 회사원 B씨는 어느 날 뉴스를 보던 중 몰카 관련 뉴스에 충격을 받았다. 몰카 자체 때문이 아니라 이 뉴스를 보던 아내와 딸 아이가 한 말 때문이다. 아내와 딸 모두 요즘 회사나 학교, 학원에서 화장실에 갈때면 벽에 구멍이 있는지부터 살피는 버릇이 생겼단다. 남의 일처럼 생각했는데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낄 만큼 몰카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 것이다.
#2. 페이스북 페이지 '군대나무숲'에 육군 병사로 추정되는 남성의 '셀카' 사진이 게재됐다. 공개된 사진 아래에는 "일병 되는 날, 기분 좋은 날"이라는 글이 함께 게재돼 있다. 부대 내 생활관 내부와 관물대 배치 등이 배경으로 등장했다.
#3. 회사원 A씨는 출퇴근 시간은 물론 점심 시간에도 펫TV를 보느라 여념이 없다. 집에 두고 온 강아지가 걱정되서 안방과 거실에 애완동물 모니터링 카메라를 설치했는데, 이 카메라에 달려 있는 스피커를 통해 강아지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어서 맘이 놓였다.
이들 3가지 사례는 IP카메라를 이용한 몰카나 해킹에 무감각한 사람들로, 실제로 여전히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인 지난 3월, 전국 30개 모텔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불법 촬영하고 이를 국외 사이트에 생중계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영남·충청권 10개 도시에 있는 30개 숙박업소(모텔) 42개 객실에 있는 TV셋톱박스, 콘센트, 헤어드라이어 거치대 등에 1mm 초소형 무선 인터넷 프로토콜(IP) 카메라를 설치해 투숙객의 사생활을 촬영, 음란사이트를 통해 생중계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최근 몰카 범죄나 IP카메라 해킹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함에 따라 렌즈 포비아(Lens Phobia)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과민하다고 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렌즈 포비아’는 카메라 렌즈를 뜻하는 ‘렌즈(lens)’와 ‘공포증’을 뜻하는 포비아(phobia)의 합성어로,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카메라를 통해 사생활이 타인에게 드러날 것을 염려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불법 카메라가 설치되었는지 여부를 탐지해주는 이른바 ‘몰카 탐지기’를 구매하는 개인들이 늘고 있다. 서울시, 수원시 등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이른바 ‘화장실 안전지킴이’를 운영해 지하철, 대학교, 일반 상가 및 오피스 건물을 중심으로 화장실의 불법 카메라 설치 여부를 정기적으로 검사하는 등 몰카 예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IP카메라 해킹 갈수록 증가
렌즈 포비아 증상을 야기한 것은 몰카만은 아니다. 서두에 예를 든 것처럼 가정용 IP카메라 해킹을 통한 불법 촬영 및 도감청 사건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우리나라 가정용 IP카메라를 해킹해 불법 녹화한 동영상이 중국에서 다량으로 유포된 것이 알려져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베이비 모니터, 반려동물용 IP카메라 등 가정용 IP카메라뿐만 아니라 노트북 웹캠, 스마트 장남감 등 이른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이하 IoT) 기기가 잇따라 해킹 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의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 170억개의 기기가 인터넷과 연결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70억개가 IP카메라나 스마트와치 등 사물인터넷이다. 오는 2025년에는 사물인터넷으로 연결된 기기가 200억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올해 5G 상용화로 사물인터넷이 더욱 확장되고 영상의 전송 속도가 제한이 없을 정도로 빨라지면서 보안에 취약한 IP카메라 등 사물인터넷 기기 해킹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 심각한 사회적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IP카메라 해킹 예방법 5가지
다양한 IP카메라의 성능은 DSLR을 따라갈 정도로 갈수록 발전하고 스마트폰 하나에 7개의 렌즈가 달릴 정도로 정교해지고 있다. 이런 카메라가 해킹되어 누군가 내 사생활을 24시간 훔쳐보고 있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인터넷진흥원은 렌즈 포비아에서 탈출하기 위한 안전한 IP카메라 사용 5계명을 발표했다.
첫째, IP카메라 관리자 계정의 비밀번호를 변경하라. 여전히 상당수의 사용자들이 제조사에서 초기에 세팅한 비밀번호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느 제품을 구매하든 설정과 관련된 설명서가 함께 들어있고, 이 설명서에 관리자 ID와 비밀번호를 변경하는 방법이 안내되어 있다. IP카메라 해킹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카메라 ID와 비밀번호를 변경하는 일이 우선이다.
둘째, IP카메라의 내장 소프트웨어(펌웨어)를 최신 버전으로 항상 업데이트한다. 제품 구입 후 발견된 취약점은 업데이트를 통해 개선해주어야 외부 공격을 막을 수 있다. IP카메라 회사에서 제공하는 보안 업데이트를 주기적으로 받아야 최소한의 해킹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셋째, IP카메라는 사용하지 않을 때는 끄는 습관을 가지자. 실내에 있거나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전원을 꺼 두자. 매번 전원을 끄거나 전원선 뽑는 것이 귀찮다면 스마트플러그를 달거나 원시적이지만 수건이나 상자로 카메라를 덮어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반려동물 관찰 용도나 빈집 감시 용도로 사용할 경우에는 집을 나설 때 전원을 켜고, 집에 돌아오면 전원선을 빼놓는 게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넷째, IP카메라에 접근하는 기기(PC나 노트북, 스마트폰, 공유기 등)의 보안 강화 및 운영체제의 최신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IP카메라의 보안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더라도 이것을 연결하고 있는 PC나 스마트폰이 해킹되면 무용지물이기 때문. 특히 공유기의 펌웨어 업데이트 등 집안의 스마트 기기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보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다섯째, 보안성이 높은 IP카메라를 구입하는 게 좋다. 싸다고 보안성이 취약한 제품을 구입했다가 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구입 전 제품 정보와 제품평, 제조사의 웹페이지 등을 살펴보고 구입하는 것이 좋다. 가장 좋은 건 보안인증을 획득한 IP카메라를 구입하는 것이다. IP카메라 역시 싼 것은 비지떡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