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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이분의 정신으로 살아 갈렵니다
ㅎㅎㅎ 저도 오늘 처음 이분에 대한 자료를 찾다보니 이런게 다 있구나 했습니다
감사 합니다
■ 이순신은 서양 사학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순신은 전략적 상황을 널리 파악하고 해군전술의 비상한 기술을 가지고 전쟁의 유일한 참 정신인 불굴의 공격원칙에 의하여 항상 고무된 통솔원칙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의 맹렬한 공격은 절대로 맹목적인 모험이 아니었다. 영국인에게 Nelson,과 견줄 수 있는 해군제독이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기는 힘든 일이지만 이순신이 동양의 위대한 해군사령관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영국 해군준장, 조지 알렉산더 발라드>
■ "천지를 주무르는 재주와 해를 다시 손 본 공로다" <명나라 수군제독, 진린>
■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모하고 숭상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임진왜란 참전 왜군 장수,와키사카 야스하루>
■ 옛부터 장군으로서 묘법을 다한 자는 한둘에 그치지 않는다. 해군 장군으로서 이를 살펴보면 동양에서는 한국의 이순신, 서양에서는 영국의 NELSON(1758-1805)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불행히도 이순신은 조선에 태어났기 때문에 서양에 전하지 못하고 있지만 임진왜란의 문헌을 보면 실로 훌륭한 해군장군이다. 서양에서 이에 필적할 자를 찾는 다면 네덜란드의 Ruyter Michiel(1607-1678) 이상이 되어야 한다. 넬슨과 같은 사람은 그 인격에 있어서도 도저히 어깨를 견줄 수가 없다. 장군(이순신)의 위대한 인격, 뛰어난 전략, 천재적 창의력, 외교적인 수완 등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그 짝을 찾을 수 없는 절세의 명장으로, 자랑으로 삼는 바이다.<일본 해군준장, 사토 데쯔라로>
■ "나를 넬슨에 비하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게 비하는 것은 감당 할 수 없는 일이다"
<승전 축하연 답사에서-일본 해군제독, 토고 헤이하찌로>
■ "이순신의 죽음은 마치 넬슨의 죽음과 같다. 그는 이기고 죽었으며 죽고 이기었다"
<출처: "朝鮮役(조선역)- 일본 석학, 토쿠토미 테이이찌로>
■ 이순신은 청렴한 인물로, 그 통솔력과 전술능력으로 보나 충성심과 용기로 보나이러한 인물이 실재(實在)했다는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상적 군인이었다.영국의 넬슨 이전에 있어서의 이름난 장수이기도 하거니와 세계 역사상 이순신만한 사람이 없으며, 이 인물의 존재는 조선에 있어서까지도 잊혀지지 않겠지만, 도리어 일본 사람의 편에서 그에게 존경심이 계승되어, 명치유신 기간에 해군이 창설되기까지 하였으니, 그업적과 전술이 연구되어져야 한다. <역사 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
■ 고니시, 시마즈 등은 이순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싸우다가 또 패주했다. 이야말로 죽은 제갈(諸葛孔明)이 살아 있는 중달(仲達)을 쫓은 것이나 다름없다. 싸움이 그치자 그제서야 비로소 이순신의 죽음을 안 진린은 놀라고 배에 엎어지기 세 번이더니 탄식하기를 “실로 그만한 자 고금에 다시없다!”고 하였다.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킨 그 충렬(忠烈). 조선왕조는 쇠망하기 시작하여 3 백년 뒤 일본에 합병 되었다. 하나, 호걸 이순신의 영명(英名)은 천추에 길이 빛날 것이다.<(이조사 대전)저자, 아오야 나기(靑柳南冥)>
■ 도고가 혁혁한 전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면 그 발가락 한 개에도 못 따라간다. 이순신에게 넬슨과 같은 거국적인 지원과 그 만큼의 풍부한 무기와 함선을 주었다면, 우리 일본은 하루 아침에 점령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대단히 실례인 줄알지만, 한국인들은 이순신 장군을 성웅이라고 떠받들기만 할 뿐 그 분이 진정으로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 하는 것은 우리 일본인보다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일본 해군 전략 연구가, 가와다 고오( 川田功 )>
■ 나는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번 이긴 그저 그런 다른 조선 장수 정도였을거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가 겪은 그 한 번의 이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며칠 몇 날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하는 장수로서 나의 직무를 다할 수 있을련지 의문이 갔다.— 와키사카 야스하루(脇坂安治) 회고록에서 —
■ 충무공은 거의 완전무결한 인물이었다. 그러기에 성자라 하고 영웅이라 일컫는 것이다.
— 한국사의 재발견 《천관우》 —
이순신, 넬슨, 도오고 제독의 해전 비교
아군 함대 | 적군 함대 | 결과 | |
도오고의 동양해전 1905. 5. 27-28 | 전함 4 순양선 27 구축함, 보조함 다수 | 전함 11 순양선 8 장갑함, 경순양함 다수 | 일본 승리, 25척 격침, 포획 |
넬슨의 트라팔가해전 1805. 10. 21 | 27 (영국) | 33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 | 영국 승리 23척 격침, 포획 |
이순신의 명량해전 1597. 9. 16 | 13 (조선) | 330 (일본) | 조선 승리 31척 격침, 90여 척 손상 |
「영민 한 예지 (叡智)와 불굴의 노력, 충성과 신의의 용단 (勇 斷). '이순신'은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모두의 가슴속에 신비로운 광망 (光芒)으로 영원히 살아야 할 구원의 표상 인 것이다.
그는 7 년이란 장기 전쟁에서 조정의 변덕과 천대, 모함과 박해, 병선과 군사와 무기의 부족
등 온갖 간난 신고 속에서도 불굴의 노력으로이를 극복, 쓰러져가는 나라와 민족을 껴안고
구하여 청사에 지울 수없는 거인의 족적을 남기고 초 연히 사라져 갔다. '인간'으로나
'군인'으로나 이만한 인물이이 세상에 다시 태어날 가망은 없다. 그는 역사와 더불어
영원히 사는 인간 완성의 한 전형 (典型)이다」
근현대 세계 해군 전략가의 이순신 평가
[대단히 실례인 줄알지만, 한국인들은 이순신 장군을 성웅이라고 떠받들기만 할 뿐 그 분이 진정으로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 하는 것은 우리 일본인보다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