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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화원
샛길이 뱀의 혓바닥을 끌고 갑니다
숨어서
숨어서
바람이 바람을 부릅니다
여기는 신분도 관계도 나이도 묻지 않는 곳
담장을 넘어간 꽃이 이웃집 뜰의 투시도를 바꿉니다
여우가 들개에게, 단정한 넥타이가 술잔에 빠진 하이힐에게,
먹물 옷이 꽃무늬 원피스에게, 꽃의 순결을 읽게 합니다
어제 핀 꽃은 떨어졌고
오늘 핀 꽃은 오직 그대에게 바치는 백지의 증서라고
잇몸을 감추며 미소를 헹구어 보입니다
안 되는 말이 되는 말로 바구니에 담길 때
빨간 스타킹이 고민에게 수면제를 선물할 때
시시덕시시덕 혼들이 빠져나갑니다
달아오른 두 눈이 빙하의 눈썹 아래에 끼워지기 전까지입니다
바람이 부니 꽃이 흔들렸습니다
꽃이 흔들리니 입술이 붉어졌습니다
벌, 나비는 없습니다
죄인은 다만 바람입니다
샛길이 뱀의 허물을 구불 고개 구불 고개 끌고 갑니다
- 양수덕, 시 '비밀 화원'
구불구불 샛길이 마치 꼬리를 감추고 사라지는 뱀 같은 상상.
이곳은 신분도 관계도 나이도 묻지 않는,
그래서 오롯한 비밀의 장소 같습니다.
직설적이지 않은, 모두 드러내 부끄러움을 주지 않는 샛길.
우리도 그런 마음의 샛길 하나쯤 있지 않겠습니까.
좋은글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