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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이주 노동자로 건너간 23세의 김종림은
가난한 농사꾼이었습니다.
흉년으로 생긴 빚을 갚지 못해 노예나 다름없는
미국 소작농이 되어 수확물의 90%를
땅 주인에게 주어야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미국의 주식 곡물인 밀이 아닌
쌀을 묵묵히 성실하게 재배하던 김종림은
조금씩 자신의 땅을 늘려가더니 어느새
400만 평의 땅에서 2만 석이 넘는 쌀을 거두어들여
사람들에게 캘리포니아 백미 대왕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피와 땀으로 이룬 재산을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아낌없이 쏟아부었습니다.
김종림이 백미 대왕이라 불리며 벌어들인 돈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독립운동의 소식을 전하는 신문사에
인쇄기를 사 주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원에도 아낌이 없었습니다.
1920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최초의
'윌로우스 한인 전투비행학교'가 설립되는데
학교 지부, 비행기 구매, 학교 운영비 등
거의 모든 자금을 지원해서 대한민국 공군의
큰 뿌리를 마련하도록 도왔던 것입니다.
그 많은 재산을 조국을 위해 사용했음에도
자식들에게조차 자신이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을 알리지 알았습니다.
자신이 가진 작고 하찮은 것도
남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아까울 수도 있고
자신이 이룬 조그만 업적도 널리 알리고
자랑하고 싶은 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가짐입니다.
조국을 위해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바칠 수 있고 그 위대한 업적 앞에서도
겸손할 수 있는 김종림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호~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