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11.20 03:13
단풍이 지고 찬 바람 부니 자식들 걱정에 잠이 안 오네
풍파와 격랑의 시절에 제일 중한 건 사랑과 믿음
돈은 잠시 없어도 그만 몸만 성하면 바로 설 수 있으니
김윤덕 문화부장
들녘이 단풍으로 요란하더니, 밤새 내린 비에 가을이 졌다.
택배는 받았느냐. 김칫국물 흐르지 말라고 겹겹이 싸맨 것인데 짐꾼들 우악스러운 손길에 터지지 않았나 걱정이다. 까만 봉지에 든 건 참깨와 홍고추고, 신문지에 둘둘 만 건 시래기다. 포일에 감은 건 담북장인데 팔팔 끓여 고추장, 들기름 한 숟갈씩 넣고 비벼 먹으면 도망간 입맛이 돌아올 게다.
다만 올해 김장맛은 신통치 않구나. 혀가 무뎌져 짠지 싱거운지 도통 분간할 수가 없으니. 그래도 죽죽 찢어 갓 지은 밥에 얹으면 내 손주들이 먹어주려나. 생굴 넣은 김치는 고생하는 어멈들 위해 따로 담근 것이니 늙은이 정성이라 여기고 맛나게 먹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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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일전에 너희 시아버지 호통은 마음에 담지 말거라. 말은 그리 덧정머리 없이 해도 속은 순두부처럼 무른 양반이다. 다시는 보지 말자 큰소리쳐 놓고는 성탄절에 손주들 뭘 사서 부칠까 궁리하느라 읍내 문방구 문턱이 닳는다. 상속 운운한 것은, 서울 집값은 자고 일어나면 열 배 스무 배로 뛰는데 시골 집값은 떨어지지 않으면 다행이니 부아가 나 저런다.
세상은 좀 수상하더냐. 스무 해, 서른 해를 길렀어도 종시 마음 놓이지 않는 게 자식이요, 가슴이 솥바닥처럼 그슬리는 게 어미라 잠이 오질 않는구나. 전쟁도 겪고 IMF도 겪었으나, 혼돈 시절엔 그저 좌우로 기울지 않고 제 본분 다하는 것이 최고였다. 사람 사귀는 일도 소금쟁이 풍금 건반 짚듯 해야 한다. 할 줄 아는 게 남 탓이요 조롱인 자, 나만 옳다고 종주먹 을러대는 자들은 멀리할지니. 행여 풍파가 닥치더라도 몸만 성하면 쓴다. 달팽이가 바다를 건넌다고, 천천히 가면 뭐 어떠냐. 고까짓 돈 잠시 없으면 또 어떠냐. 중한 건 언제나 사랑이었다. 따뜻한 손, 다정한 말, 향기로운 입김과 눈길이 벼랑 끝에 선 사람을 살리는 법이다.
/일러스트=김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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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배로 낳은 아들들이나 너희 눈엔 밉기도 할 테지. 복부 가르는 수술을 하고도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굶게 생긴 남편과 자식 밥해 먹인다고 아픈 배 움켜쥐고 부엌으로 나갔으니, 그렇듯 나약하게 키워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단점도 어디 한둘이랴. 큰애는 고지식한 책상물림이라 입만 열면 속 터지는 소리요, 둘째는 콧물만 찔끔 나와도 나 살려라 엄살떠는 게 다섯 살 때부터이니라. 셋째는 물샐 틈 없는 구두쇠이나 약빠른 고양이 밤눈 어둡다고 실속이라곤 없느니. 그래도 너희 시아버지처럼 한눈파는 데 없으니 미쁘지 아니한가. 세상에 별 남자 없다. 천하의 신성일도 흙으로 돌아간다. 꽃도 반만 핀 것이 곱다고, 모자란 듯 빈 데가 있어야 이쁜 법. 자식은 떠나도 서방은 남아 등을 긁어주느니, 목석 같은 여인과 한평생 살아준 저 사내가 고맙고 애틋해지니 이 무슨 조화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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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내 생애 마지막 김장이 될 듯하다. 걸핏하면 전신에 모닥불을 퍼붓는 듯하고 가슴은 바짝바짝 조여오니 정신이 다 몽롱하다. 어젯밤엔 나 열일곱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어른거리니 꿈인가 생시인가. 병약한 맏딸이 열감기 걸리면 밤새 머리 짚어주시다 광에서 가져와 깎아주시던 무는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함박눈 내린 날 동생들과 눈사람 굴리던 기억도 나는구나. 숯덩이로 눈썹을 박고 버선 모자 씌워주면 둥글둥글 귀여우면서도, 손 없고 발이 없어 어디 도망도 못 가고 밤새 찬 마당에 서 있던 눈사람이 가엾기만 하더니, 대식구 섬기느라 마실 한번 맘 편히 가보지 못한 내 신세가 꼭 그와 같구나. 꽃가마 타고 시집오던 날에도 눈보라가 쳤던가. 소금으로 국을 끓여도 맛나던 시절. 저 눈이 쌀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던 날도 있었다. 팔자 도망은 못 한다고 뛰쳐나가고 싶은 적 왜 없을까만 어디 갈 데가 있어야지. 한 줄기 햇살에 한 줌 물로 사라지는 눈사람처럼 이승과 영영 작별하면, 한 마리 새로 날아올라 지구 끝까지 가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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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고 미안했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은 못 되어도 며느리들한테 모질었다 소리 안 들으려 애는 썼느니. 섭섭한 것 있더라도 많이 배운 너희가
품어다오. 나 죽으면 막대 잃은 장님 될 그 양반이 걱정일 뿐, 후회는 없다. 내 비록 까막눈이나 온종일 허리 구부려 일하며 이마에 흐르는 붉은 땀을 먹고 살았다. 춤 잘 춘다고 훈장은 줘도 평생 소처럼 일만 하고 산 여인에게 주는 상은 없으니, 못 배워서인가.
하여, 나 죽거든 묘비에 한 줄 새겨다오. '잘 살았다, 잘 견디었다.' 그것으로 나는 족하니.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8072002876
혜화역시위를 옹오하던 아나운서 김성주 누님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