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이란 말
어느 시인의 시 '바닥이란 말'을 읽으며 바닥에 대해 생각합니다. 모양을 보고 각을 따지고,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훑으면 '바닥을 쳤다'는 말이 슬며시 고개를 내밉니다.
그 말은 갈 데까지 가봤다는 말, 인생의 쓴맛을 톡톡히 맛봤다는 말. 그래서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 바닥과 한 몸이 되지만, 거기에도 살아날 구멍은 있습니다. 툭툭 자신을 털고 일어선 이에게만 보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쥘 때에만 보이는 반환점.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이에게만 보이는 그것, 하지만 그것이 만만한 일인가요. 체온을 기억하는 바닥은 집요합니다. 아무 등이나 일으키지 않는 이중성은 하룻밤 사이 폭락한 주가처럼 예상 못한 씽크홀을 숨기기도 합니다.
언젠가 해변을 서성이며 바라본 바다가 바닥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해고통지서를 불쑥 들이밀던 사나운 바다, 인정머리 없는 바다였지만 그 바다가 다시 출항할 수 있다는 믿음을 철썩철썩 들려주는 푸른 바닥임을 알았습니다. 바다는, 시인의 말처럼 ㄱ자로 몸 굽혀 받치고 있는 짠내 나는 바닥이었습니다. 바닥이 바닥을 넘어 새로운 삶이 되거나 또 다른 가치로 전환되는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 최연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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