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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삼덩굴이 서로 몸을 섞자 순간 길이 사라졌다 멈춘 길 위에서 누군가의 몸을 들여다본 적 있었다 화려한 옷을 입고도 외출할 수 없었던 불가해한 숲을 빠져나가려다 마주친 까만 궁금이었다 그때 나무는 깔깔한 털갈이로 변신 중이었다 두텁고 딱딱한 환영 속으로 벌레들이 뚝뚝 끊긴 길을 물고 있었다 나무에서 꽃이 필 때 혹은 질 때 오래된 바람을 만나듯 환삼덩굴은 셀 수 없는 다리를 들어 반겼다 숲의 끝에 기다랗게 죽은 트렁크 하나 놓여 있었다 죽는다는 것은 나이를 내려놓는 것 속에 아무것도 들여놓을 수 없는 것 살아서도 죽어서도 떠날 수 없다는 것 환상은 누워서도 아파서도 사라진 길에 누운 숲의 마중 벌레에게 몸을 내어준 트렁크나무 까맣게 여행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 문설, 시 '트렁크나무' 죽은 나무의 빈 공간을 트렁크라고 생각한 상상. 죽어서도 무언가를 위해 내어주는 나무. 차곡차곡 시간을 저장하고, 누군가의 길이 되어주는 나무겠지요. 나만을 주섬주섬 챙겨 넣은 욕심을 비워보고 싶은데. 길이 없어진 뒤에야 보이는 또 다른 길이 있을까요. 자연의 섭리가 무섭고 위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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