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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나비
설레는 햇살 한 짐 들쳐 멘 나비, 철둑 개찰구를 가뿐하게 빠져나온다
허공 몇 장을 넘겨 행선지를 훑더니
빠듯한 시간,
단락도 쉼표도 생략한 채 달아오른 철길을 읽는다
레일에 꽂힌 날개가 책갈피가 되는 느낌을 이쯤에서 읽는다
저만치 소실점을 끌고 오전이 달려오고
점점 커지는 녹슨 울림을 완독하지 못한 날개가 열차 선 밖으로
사뿐 물러선다
아른아른 계절을 싣고 휘우듬 계절의 행간을 빠져나가는 열차소리
달리는 것밖에 모르는 열차처럼
날아갈 일밖에 없는 나비는 얼마나 많은 꽃의 운명을 통과했을까
노곤함을 어깨 한켠으로 비스듬 내어주는 여행길
뿌리 깊은 족보가 어느새 너울너울 멀어진다
내게서 이미 날아가 버린 편도의 인연들
문득, 마음을 빠져나가는 가벼운 날개를 앞섶에 꽂고 싶은데
내 들숨과 날숨을 읽지 못한 나비의 속독이 저만치 멀다
나를 벗어난 여행은 다시 익숙한 노선을 따라 돌아올 수 있을까
저 너머,
깨알 같은 KTX시간표가 초속으로 넘어간다
- 시, '문득,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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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나비처럼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은 때입니다.
하지만 이 더위도 잠깐,
다시 힘차게 일상으로 돌아갈 계절이 올 겁니다.
건강한 여름 보내세요.
- 최연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