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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가져다준 선물
원우네 세 식구는 방 하나에 작은 부엌이 딸린 열 평 남짓한
집에 살고 있었다. 수돗물마저 이웃집에서 길어 와야 하는 형
편이고 보니 살림살이라는 것이 그야말로 옹색하기 이를 데 없
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날도 평소 때와 마찬가지로 생선뼈만
가득한 매운탕이 저녁상에 올라왔다. 수저를 들던 원우가 불쑥
볼멘소리를 했다.
“이게 뭐야! 먹을 건 하나도 없고 생선 대가리에 뼈다
귀뿐이잖아.”
갑자기 웬 반찬투정인지 모르겠다는 듯 엄마가 멍한 표
정으로 원우를 바라보았다. 옆에 있던 아버지 역시 전에 없던
아들의 행동에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원우는 들고 있던 수저
를 팽개치듯 놓고는 휑하니 방을 나가 버렸다.
"저, 저 녀석이...."
민망했던지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던 어머니가 양미간을 찌
푸렸다. 아버지 역시 마뜩찮은 표정이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원우가 막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였다. 평소 여간해서 서두르는 법이 없던 아버지가 꽤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우야"," 너 얼른 시장에 가서 엄마 좀 찾아와야겠다.
엄마가 빨리 와야 할 일이 생겨서 말이다."
원우는 꽤 급한 일이다 싶어 두말하지 않고 시장으로 달려갔다.
원작 작은 시장이라 어머니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엄마는 시장 입구 조그마한 횟집 앞에 서 있었다. 그 곳은 평
소 엄마와 친분이 있던 평택 아줌마가 운영하는 횟집이었다.
원우가 다가서려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평택 아주머니가
문 밖으로 나왔다.
"미안해서 어쩌지... ,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까 손님들이
다들 매운탕을 찾으시네. 그래 봐야 생선 뼈다귀지만 그나마
오늘은 얼마 안 돼네.”
"아니에요 무슨 말씀이세요. 염치없이 매일 얻어만 가는
데..."
평택 아주머니가 까만 비닐봉지 하나를 건네주자 어머니는
고맙다는 듯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순간 원우는 도망치듯 시장 입구를 빠져나왔다. 그러곤 마구 달
리기 시작했다. 원우가 숨이 턱에 닿을 때까지 뛰어간 곳은 공
장 폐수가 흐르는 개천가 였다. 원우는 이마에서 흘러내리
는 땀을 닦을 생각도 않고 개천가 돌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원우는 그제서야 그동안 먹었던 생선 매운탕에 살이 없었던
이유를 알았다. 어머니는 평택 아주머니가 회를 뜨고 남은 생
선 대가리나 잔뼈 등을 얻어와 매운탕을 끓였던 것이다. 원우
는 하나 밖에 없는 자식에게 제대로 된 생선 한 마리도 먹일 수 없
었던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생각하니 콧마루가 시
큰해지며 자꾸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늦은 저녁 , 원우가 집에 들어서자 아버지가 잔뜩 화가 난 얼
굴로 말했다.
" 너 이 녀석, 찾아오란 엄만 안 찾아오고 어딜 쏘다니다 이
제 오는 거야?"
원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
었다.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 어머니가 슬퍼할 것 같아서.
였다. 원우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이었다. 평소 같으면 이미 곯아떨어져 있을 아버지
가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ㄷ. 그때 어머니의 처
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너무 걱정 말아요. 세를 올릴 거라는 건 진작부터 알
고 있었잖아요."
아버지는 깊은 한숨만 내쉴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원우는 그
런 아버지가 안쓰러웠다. 매일 새벽, 수염도 깍지 않은 덥수룩
한 얼굴로 힘겹게 물을 길어 나르는 아버지였다.
그렇게 숨통이 멎을 것같이 답답하고 힘겨운 날들이 계속되
던 어느 날이었다. 뜻밖에도 저녁상에 불고기가 올라왔다. 초
저녁부터 술에 잔뜩 취한 아버지는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
다. 어머니는 점심 먹은 것이 체한 것 같다며 고기 한 점 입에
넣지 않았다. 그리고 원우가 밥을 먹는 내내 흐뭇한 모습으로
바라 보았다.
잠시 후 밥상을 물리고 나서 어머니는 원우를 앉쳐놓고 내
일을 이사를 해야 하니, 일찍 자라고 당부했다. 원우는 어디로
가냐고 방은 몇개냐고 묻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어두운 표정
을 보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밤이 이슥해질 무렵이었다. 동네 공동 화장실에 가기 위해
방을 나오던 원우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어머니가 부뚜막 앞
에 쪼그려 앉아 밥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해서 아무것도
못 먹겠다던 어머니가 시들한 김치 하나를 놓고 허겁지겁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순간 원우는 숨기라도 하듯이 방으로 돌아왔다. 죄스러움에
온몸이 차갑게 식으며 굳는 느낌이었다. 문 앞에 서서 잠시 고
민하던 원우는 조용히 방문을 열고 어머니가 있는 부엌으로 갔
다. 어머니는 힘이 쭉 빠진 얼굴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원우는 천천히 다가가 어머니의 젖은 두 손을 꼭 쥐며 말했다.
"엄마, 미안해! 내가, 내가 나중에 꼭 성공할게! 그래서 엄
마 절대로 고생 안 시킬게.... "
원우는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 울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원우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
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원우야, 엄마는 아무래도 괜찮아.
그때 원우는 보았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마
다 않는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커다란 빛을....
빛 바랜 사진 속의 어색한 표정들 위로 원우 씨의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기억조차 아련한 옛 사진을 보니 어린 시절
고단했던 삶의 기억이 또렷하게 되살아 났다. 어느새 쉰을 바라
보는 나이가 된 지금, 원우씨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 그리고 사
회적으로 인정받는 유능한 의사로 나름대로 성공한 삶은 살아
가고 있었다. 원우씨는 이따금씩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이 누
리고 있는 지금의 이 행복은, 어릴 적 그가 겪어야 했던 모진
가난이 가져다준 선물은 아닐까 하고.
서재에서 나온 원우씨는 어머니가 계시는 방으로 갔다. 어
머니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이미 팔순을 넘긴 어머니의 이마
엔 메마르고 깊은 주름이 도랑처럼 패어 있었지만, 맑고 평화
로운 모습만은 변함이 없었다ㅏ.
원우씨는 젖은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했다. 조그만 단칸방
에 어린 자식을 데리고, 맡도 끝도 없는 가난의 늪에서 허우적
거려야 했던 어머니, 걸머진 그 가난 때문에 시달리고 주눅
들었지만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깊은 슬픔을 견뎌내며 살
아온 어머니, 어린 시절 그가 지치고 힘들 때마다 커다란 나무
그루터기처럼 늘 그곳에 계셨던 어머니, 그래서 쉰이 다 된
나이에도 언제나 유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곳, 그
곳은 바로 어머니의 품이댜.